스타트업 PR 인턴으로 살아남기(1)

다시 고른 문장, 다시 만든 하루

by 비상구가빨강

그래서 나는 PR 에이전시를 택했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도 분명 매력적이었다. 연봉이 높았고, 체계가 정리돼 있었고, 내가 쓴 글이 하나의 데이터로 쌓이는 시스템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회사의 합격 오퍼를 바로 거절했다. 그보다는—아직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르는 에이전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다시 일’을 고르는 기준은 스펙도, 안정성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단순히, 그 일이 나의 언어를 좀 더 정제해줄 수 있을지를 먼저 보게 됐다.

결국, 나는 그 PR 에이전시의 인턴이 되었다. 여기는 2022년에 생긴 회사인데,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와 같다. 이상하게 그런 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성인이 된 햇수와 같은 나이의 회사. 어쩌면 그게 우연히 맞아떨어진 감정적 접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나한테는 꽤 중요했다.


이곳이 좋았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는,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라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이지만 이미 경력이 탄탄한 시니어들이 있었고, 대표님, 이사님 모두 업계에서 오래 일해온 분들이었다. 초보자인 나를 잘 이끌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는데, 그건 맞았다. 이건 다음에 더 자세히 써보겠지만, 정말 좋았다.

덕분에 나는 기업 대표님 인터뷰에도 동석했고, 기자 미팅에도 함께했다. PR이라는 일을 텍스트로만 배웠던 나에게는, 실무의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한 텍스트가 됐다. 특히 좋았던 건 이사님이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브랜드의 PR을 담당하셨다는 점이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언어의 결, 문장의 방향을 실제 현장에서 다뤄온 사람이 있다는 건 꽤나 큰 설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회사가 에이전시라는 점이었다. 이전 직장도 에이전시였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았던 건 늘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패션, 뷰티, 기술, 마케팅… 고객사의 종류가 다채로우니 배우는 것도 다채로웠다. 분야마다 말의 결이 다르고, 그 안에서 브랜드마다 말의 온도가 다르다. 그런 걸 조율해보는 과정이 내겐 제법 재미있었다.


이곳은 내 언어를 시험해보는 실험장이자, 나라는 사람을 브랜드화해가는 경험의 장이었다. 회사에 잘 붙어 있던 사람이 아니라, 문장을 골라주는 사람, 필요한 언어를 만드는 사람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콘텐츠 마케터를 그만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