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지출이란 도대체 얼마일까?
얼마 전 가족끼리 용산 아이파크몰을 우연히 방문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두런두런 매장 구경도 하며 놀다가 닌텐도 팝업 스토어 얘기를 꺼냈다. 갑자기 몇 주 전에 봤던 기사가 번뜩 생각났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어딜 가도 예약이 우선이라 걱정이 됐다. 예약을 해야 갈 수 있을 텐데, 그래도 현장 예약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는 어불성설. 주말, 서울시내, 인기 회사의 팝업 매장 그리고 사전 예약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다. 그래도 뭐, 비록 여기는 못 가지만 아쉬움을 달래려 우린 6층 닌텐도 샵으로 향했다.
전시된 게임 타이틀 모두가 다운로드 전용(*예전처럼 게임 본체에 칩/팩을 꽂아서 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 연결로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플레이)이라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한데 내 손을 잡고 있던 딸이 갑자기 끌리듯 한쪽으로 스르르 다가간다. 그리고 얘기한다. "아빠, '커비의 드림 뷔페'가 있어요. 저건 크리스마스 때 사주기로 약속했죠?'
우리 딸과 함께 닌텐도 스위치를 즐긴 지도 벌써 5년 정도 됐다. 그동안 해온 게임이 한 다섯 개 (저스트 댄스 2019, 링핏, 동물의 숲, 마리오파티 그리고 말랑말랑 두뇌학원) 정도인데 같이 노는 상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즐기는 타이틀이 달라진다. 가령 가장 처음에 같이 한 게임이 저스트 댄스인데 그 당시 딸이 독감에 걸려 닷새간 집에만 있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한 이틀 지나자 열도 잡히고 상태도 호전됐는데 밖에 나가질 못하니 근질근질했던 거다. 그런 딸이 안돼 보여 먼지만 뽀얗게 쌓이고 있던 닌텐도 스위치를 꺼내 다운로드로 게임을 구매했다. 조이콘(*게임 컨트롤러)을 각각 손목에 차고 노래와 화면에 나오는 댄서의 움직임에 맞춰 같이 신나게 놀았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딸과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춤추며 놀았는데, 나중에는 힘들어서 좀 쉬자고 할 정도로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집에 갇혀있던 나머지 기간 동안 매일 저녁 꼬박꼬박 한 시간씩은 같이 춤추며 놀았는데 이 게임이 바로 우리 부녀가 함께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학교 친구들과는 두 달에 한번 꼴로 동숲 온라인에서 만난다. 엄마의 핸드폰을 빌려 카톡의 그룹통화를 켜놓고 실시간으로 얘기를 나누며 각자의 섬으로 놀러 가 1시간가량 논다. 반면 유치원 때부터 만나왔던 동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음악 듣고 따라 부르기, 블록 쌓기 그리고 슬라임을 하다 거실로 나와 동숲을 제외한 나머지 타이틀을 거진 다 한다. 처음에는 춤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두 명이 한 팀이 돼 한 명은 다리에 조이콘을 한 명은 링콘을 들고 운동을 한다. 그리고는 마리오파티의 미니게임을 신나게 하다, 가만히 앉아 두뇌게임 다섯 판 짜리를 이어간다.
지금까지 얼마 썼나 가만히 계산해 보니 동숲의 확장팩 하나까지 포함하면 대략 30만 원 정도 쓴 것 같다. 5년간 그 정도 썼으니 한 달에 오천 원 꼴이다. 아, 동숲 온라인 접속을 위해 4,900원짜리 한 달 이용권을 한 일곱 번 정도 샀지만 뭐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 같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손을 잡고 딸이 갖고 싶다고 말한 '커비의 드림 뷔페'는 콘텐트 양이 많지 않은지 가격도 18,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순간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적당한 지출을 해 온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살짝 든다. 뭔가 안쓰럽다는 마음이랄까. 얼마 하지도(?) 않는데 무슨 유난을 떨듯 이럴까 하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봤다. "이거 지금 사줄까, 딸?" 그러자 딸은 "아니 괜찮아. 크리스마스 때 사기로 약속했잖아. 지난번에 아빠가 동숲 해피 홈 파라다이스도 사줬는데. 그거 재밌어."
놀이에 얼마를 쓰면 적당할까? 그리고 게임에는 얼마를 쓰면 적당할까? 가끔 모바일 게임에 아이들이 몇 백만 원을 썼네라는 기사를 접할 때면 이런 생각도 든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게임이길래 몇 백만 원을 쓰도록 하는 거지? 그리고 저렇게 쓸 때까지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는 거지? 이런 부분을 시스템적으로 막고자 여러 장치도 있다. 가령 GCRB(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를 통해 등급을 받은 청소년 이용 게임물(전체, 12세 15세 이용가)의 경우, 월 7만 원 이상을 쓰지 못하게 돼 있다. 뿐만 아니라 핸드폰 결제 한도도 있어 모바일은 조금만 신경 쓰면 어느 정도 통제도 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부모 계정에 부모 카드를 걸어놓은 경우라 할지라도 카드 한도를 걸어놓으면 그 이상 사용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근데 여기엔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는 것 같다. 부모 자녀 간에 같이 시간 보내면서 같이 놀고 그러면서 대화하며 싸우고(?) 서로 이해하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이 정도면 적당해요 우리가 즐기기엔'이라는 과정이랄까.
난 이어서 딸에게 말했다. "물론이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그걸 사줄게. 그럼 지난번에 얘기한 마리오 월드는?" 딸이 말한다. "그건 내년 생일 때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