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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Feb 02. 2024

콘텐트에 있어 적당한 등급이란 무엇인가

'권고'와 '강제'의 완급조절

"아빠, 이건 깔아도 돼?"


 우리 딸이 자기의 패드를 내게 내밀며 묻는다. 게임앱 얘기다. 게임과 관련해 우리 집은 자연스레 몇 가지 규칙을 갖게 됐다. 그중 하나는 이용 시간이다. 주당 총 2시간의 범위 안에서 나눠서 쓸 수 있고 학기 중에는 금, 토, 일 동안에만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총 5개의 게임 앱을 깔 수 있고, 혹 다른 것을 깔고 싶다면 원래 있던 것 중 하나는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깔기 전에 반드시 아빠에게 그 앱을 보여줘서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 정도다.


 내가 확인하는 건 사실 단순하다. 가령 개발사/퍼블리셔가 듣도 보도 못한 완전히 이상한 곳은 아닌지 혹은 인앱결제를 심하게 유발한다거나 광고는 지나치지 않은지 또 전체이용가인지 정도다. 보통 이런 요구는 주말께 다른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후 발생한다. 친구나 언니들과 같이 놀면서 새로운 걸 경험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기 순서 기다리며 맘껏 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집에서 달래고 싶은 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레 딸이 뭐 하는지 보게 된다. 대부분이 무료게임이기에 인앱결제(게임 안에서 콘텐트 구매 등을 통해 결제를 하도록 하는 모델)가 있는 건 당연하고 광고 역시 존재한다. 그게 있어야 그들도 먹고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앱결제나 광고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이 없다. 그저 내 주관적으로 살펴봐 이 정도면 괜찮겠네 정도로 볼뿐이다. 그저 플레이하는 데 지나치게 영향을 주는 것만 아니라면 오케이다.

 이제 남은 건 적절한 콘텐트 등급이냐 아니냐이다. 이건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것이라 지금까지 특별히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근데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딸은 점점 커가는데 그때는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까? 그때도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게 맞을까? 왠지 그때도 내가 보고 있으면 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소리가 지금부터 들리는 것 같아서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럼 그때는 우리 딸과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까? 근데 가만, 등급 이란 건 대체 뭘까?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의 경우 객관적인 기준과 나의 주관이 특별히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그 중간에 있는 12세와 15세, 이건 대체 뭔 차이일까?  


 모든 콘텐트에는 등급이 있다. 보통 나이에 따라 나눠져 있지만 그 나이 기준이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법으로 등급분류를 강제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자율로 맡기기도 한다. 또 어떤 곳은 이 둘을 섞기도 한다. 근데 우린 이미 이런 등급에 익숙하다. 왜냐하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영화나 OTT 영상을 시청하거나 온라인게임을 하려고 하면 이용자는 무조건 보게 돼 있다. 시작 전에 그 콘텐트를 이용할 수 있는 나이에 대한 정보를 말이다. 콘텐트 종류와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보통 4개의 등급을 갖고 있다. 전체이용가, 12세 이상 이용가, 15세 이상 이용가 그리고 청소년 이용불가. 지금껏 이용자의 입장에서 등급에 대해 특별히 고민한 적은 없었다. 난 이미 어른이니까. 그저 내 업무와 연관된 영역 중 하나이기에 무심하게 바라봤을 뿐이다. 하나 점점 커가는 우리 딸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다르게 다가왔다. 딸은 커가는 단계에 있기에 모든 콘텐트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없다. 그럼 우리 딸과 나는 등급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해야 할까?


 요런 고민 속에서 2023년 10월에 업데이트된 호주의 사례를 보게 됐다. 업무 범위가 확장되면서 운 좋게도 해외 기관의 정책변경을 접할 때가 있는데 호주가 바로 딱 그런 경우였다. 호주는 작년 10월, 컴퓨터게임(i.e. 온라인게임)에 대한 등급분류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했다. 등급분류와 관련해 그전에는 호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난생처음 이 자료를 보며 처음에는 생각보다 촘촘한 등급분류가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하나 가정 내에서 부모-자녀 간에 협의해서 조정하도록 남겨 놓은 부분도 있고, 특정한 등급(MA 15+와 R 18+) 이상의 경우엔 법적으로(*legally restricted category or legally restricted to adults) 접속을 강제하도록 돼 있는 부분까지 보니 생각할 지점이 분명 있었다. 이들도 나이에 따라 콘텐트 등급을 구분하긴 한다. 하나 특정한 나이 기준을 정해 그 이하에서는 '권고'라는 말로 각 가정 내에서 알아서 하도록 했다. 하지만 특정 등급의 콘텐트 이상부터는 기준이 되는 나이만이 접속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식이었다.


 점점 커가는 딸과의 관계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선에 서볼 때가 생긴다. 딸이 커가면서 비단 '온라인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놀이와 관련해 앞으로 더 많은 얘기를 나눌 거라 믿는다. '권고'와 '강제'의 완급조절과 이를 가능케 하는 대화 속에서 딸도 나도 같이 성장하겠지?



* 참고: Guideline for the Classification of Computer Games 2023, released on Oct.24, 2023

G (General)

PG (Parent Guidance)

M (Mature) >> 15세 미만인 자들에게 추천하지 않는다고 할 뿐이다

MA 15+ (Mature Accompanied) >> 15세 미만인 자들에게 적합하지 않고, 법적으로 제한된다고 명시

R 18+ (Restricted) >> 법적으로 성인들에게만 허용된다고 명시

RC (Refused Class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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