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

사랑에 대한 명확한 정의

by 지수연

간혹 마음이 꿀렁거리면 어디에도 업로드하지 않는 글을 쓴다. 형식에도 문장에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솔직한 감정을 적어 내려간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감정은 외면해버리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감정 해소법은 없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낱낱이 끄집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감정 기복 대비, 꽤 빠른 시간 안에 안정을 되찾는 사람이 되었다.


'너나 잘해'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연장자를 만나고 돌아온 후, 하나님에게 잔뜩 불평불만을 하고 싶은 날에도 글을 썼지만 가장 자주 쓰는 주제는 역시나, 그 당시 만나고 있는 연인에게 하고 싶기도, 하고 싶지 않기도 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그 과정은 그들과 나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이별을 확신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떤 결과에도 후회는 없는 걸로 보아 그 글들은 어차피 닿아야 할 도착지에 조금 더 빨리 도착하게 만든 매개체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홀로 끄적인 적이 있다. 대략적으로 보자면 그 글은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 ㅡ 우리 사이에 트라우마가 된 어느 사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의 가까운 지인,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내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ㅡ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나 논리 정연했는지 석사 논문의 시발점으로 써먹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 전화로 이별을 논했더라면, 어쩌면 그 문장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최악의 이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들은 그는 '아하, 이래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군'하고 끄덕끄덕 납득을 한 후 달칵 전화를 끊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시작과 끝은 두 눈을 보며'라는 주의이기에 얼마 후 동대문 근처의 어느 카페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적었던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아닌 '내가 그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였다. 그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것, 내 선택이 이성적으로 적합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모든 끄적임이 무색했다. 나는 몇 마디 문장으로 끝을 말했고 그 또한 말을 늘이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확실한 결심인지 물었고, 눈치채고 있었다 말했으며,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사랑이 식었다는 사실이라 했다. 마지막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결국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그것이 전부였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과정을 겪은 어느 연인에게는 그것이 '우리가 헤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될지 모른다. 우리 사이에 트라우마가 될 만큼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어느 가까운 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극복하기를 선택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것. 사랑에 대해 이보다 더 명확한 정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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