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재글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글은 '결혼에 대한 확신'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짧은 에세이다. 그때 당시의 나는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문에 의문을 거듭하다가 그저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글을 마무리지었는데, 뭐 '어떻게 확신을 갖느냐'에 대한 해답 따위도 전혀 없었고 그저 내가 느낀 혼란들만 나열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혼란에 공감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꽤나 동질감과 위안을 느꼈더랬다.
고작 일 년 차이지만 지금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 바뀌었다. 간단하게 '결혼에 대해서는 누구도 온전한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결국 상대를 운명이라 여기고 확신을 키워나가며 사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져 가고 있달까. '그럼 이전 글에서 말한 찌릿찌릿 꽁기꽁기는 포기하는 건가요.' 하고 묻는다면 포기라기보다는 1순위에 두지 않는 것 정도로 합의를 봤다고 하겠다. 누군가 '운명 같은 사랑'에 대해 물을 때마다 나는, 늘 잘 모르겠다는 어쭙잖은 대답으로 일관해왔다. 이별 직후 며칠간은 언제나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몇 날 며칠을 술독에 빠져 지낸 적은 없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난 연인들과 함께한 추억은 객관적인 사건 기록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었다. '아, 그 사람과 그곳에 갔었지' 정도가 전부였다. 어쩌면 나는 헤어진 이후의 아픔을 척도로 '운명'을 계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아파야 '운명'이라는 합격 딱지를 받을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우스운 건, 적지 않은 연애 끝에 '이 사람이구나' 하는 이를 만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트러블이 쌓이자 '이 사람이 정말 내 운명의 사람일까' 하는 의심이 여지없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아니 그럼 내가 느낀 그 특별함은 어떻게 되어버린 거지’ 싶은 마음에 멍하니 넋을 놓게 되는 허무함이었다. 그렇다고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운명을 의심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그를 생각했고, 또 사랑했다. 내가 이 시기를 거치며 또렷하게 깨달은 두 가지는, 인간과 확신이라는 두 단어의 부조화였다. 무언가에 대한 <확신>은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과거에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많은 명제 중 지금도 유효한 것이 몇 가지나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음, 그렇군 하고 가볍게 인정하게 됐다. 결국 사랑을 유지한다는 건 끊임없는 노력으로 순간의 확신을 재생산해야 하는 것이라, 나는 결론을 내렸다.
'삶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 과정을 즐기라'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사랑과 결혼 또한 완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완성'이 아니라 '과정'으로 여긴다면 조금 더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상대와 나를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나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사람인지 아닌지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다 끝낸 후 집에 도착해서 나란히 발 뻗고 누워봐야 아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