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모 남자 연예인이 한 여인에게 푹 빠져 연예계 은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오직 그 여자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내 인생의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그 사람과 나누고 싶고 별 쓸데없는 일에도 서운해지며 그 사람만 내 곁에 있으면 구멍 난 퍼즐 조각 하나가 딱 들어맞아 불이 반짝 켜지듯 내 인생도 완벽해질 것만 같다. 흔해 빠진 노래 가사처럼 너만 있으면 되는 일. 글쎄, 정말 너만 있으면 되는 걸까.
나는 누군가로 인해 완벽해지는 내 인생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내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할수록 본인의 인생은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로 인해 망가지는 인생이라면 모를까.)
물론 나도 '상대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에 대한 로망 정도는 있다. 사랑하는 유키호를 위해 스스로 죽은 이가 되기를 선택한 백야행 속 료지나 철없는 데이지를 향한 위대한 개츠비의 사랑이 그랬다.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잿가루처럼 날려버리는 그들의 희생. 그리고 뒤를 잇는 모두의 파멸.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이보다 더 열정적이고 예술적인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_2013年
하지만 이건 소설이다. 현실에서 나는 그런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사랑은 나에게는 꼭 마르크시즘 같아서 김형석 어르신의 말처럼 '20대에 마르크스를 모르면 바보가 되지만, 30대가 넘어서까지 마르크스에 매달리는 사람은 더 바보'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언젠가는 스스로를 그런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여자라 여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리를 잡는 건 반대의 확신. 나는 그저 휘몰아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여자였다. 내가 홀로 서지 못하는 삶.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가 상대를 잃어버리고 운명보다 더 완벽한 방법으로 무너지는 내 인생. 아, 끔찍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은 파멸했다. 내 인생은 소설이 아니며 나는 개츠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서 적당히 평온한 사랑이면 족할 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너무 깊은 늪에 빠져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기어코 붉은 등이 켜지고야 마는 것이다.
경고, 경고!
이렇게 나는 또 하나의 소설 도입부에서 책장을 덮는다.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안전하다. 말을 잘 듣는 마음을 개처럼 키우는 일이란 꽤 편리하다. 한때는 나 같은 회의론자의 앞날을 염려했지만, 가야 할 길은 예상외로 단순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나의 푸념에 누군가 대꾸했다. 너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되는 일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