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엄마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녀의 그늘 아래에서 이루어낸 일들

by 지수연

평소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살았다. 뭐가 크게 잘나서가 아니라, 악착같은 생활력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대개 나를 세상을 잘 아는 어른스러운 친구로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내가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엄마와 싸울 때마다 말했다. 내가 얼마나 대견한 딸인지 아느냐고, 내가 비싼 예체능 학원비 해결해가며 대학 가느라, 학비까지 해결하며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핸드폰비며 교통비며 전부 알아서 해결하고,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강사로 출강한 딸이라고 내가. 이렇게 칭찬받을 일만 하면서 산 딸에게 왜 그런 이야기만 하느냐며 악을 썼다. 나 엄마 용돈도 매달 꼬박꼬박 드리는데 왜 그렇게 내가 나쁜 딸인 것처럼 말해, 엄만 정말 양심도 없어. 정말 양심도 없어.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삼십 년이었다.




며칠 전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엄마와 꼭 닮은 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왜소한 몸과 좁은 보폭. 문득, 엄마의 삶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삶을 얼마나 알고있나. 나보다 더 낮은 학력으로, 더 작은 키와 더 작은 체구로 살아왔을 엄마의 시간들과, 힘든 상황 속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며 하나뿐인 딸에게 따듯한 밥을 내었던 엄마의 피로했을 날들이 예고없이 떠오르며 마음을 파고들었다.


내가 살아가며 받은 스트레스들을 친구들과 풀 때 엄마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내쳤을까. 내가 엄마와 싸우고 누군가과 울며 통화할 때 엄마는 그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다독였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며 무언가 얹힌 기분이 들었다. 자식이란 존재는 어째서 이토록이나 당당히 이기적일 수 있나, 한 치 앞 밖에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내가 한 일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마가 나보다 훨씬 멋진 여자라는 사실을, 훨씬 칭찬받을 만한 대단한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혼자 해냈다고 생각한 그 모든 일이, 엄마의 그늘 아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깨닫는데 삼십 년 남짓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먹으면 쉬이 알 수 있는 삶이었지만 보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려 마음을 먹으니 자연스레 보이는 당신의 날들. 눈 뜬 장님 같던 지난 시절 내 모습이 스쳐갔다.


엄마가 좋아하는 야식을 사들고 털레털레 걸어가던 퇴근길. 쓰린 마음 깊숙한 곳에 따스함도 움을 틀었다. 아직 엄마가 내 곁에 있음에, 기회에 있음에 차오르는 안도감. 그 마음이 어찌하지 못할 만큼 소중했다. 엄마를 나를 생각하며 품었던 마음에 조금 닮은 마음일까 싶었다. 감사했다. 아직 내 곁에 있어주어서,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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