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던 그녀가 운을 뗐다. 저 고민이 있어요, 했다. 두 귀가 쫑긋해진 내 모습을 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대단한 건 아닌데요. 그냥 뭐랄까, 요즘 즐거운 게 없어서요. 여행이나 운동도 어쩐지 시큰둥하고 마음에 동하는 것들이 없어서 조금 쓸쓸해요.
아아 그런 문제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마음에 대한 고민은 저만치 안 쪽을 파고들어야 하는 일.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되었다. 으음 하고 뜸을 들이는데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래저래 사는 게 재미가 없으니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까지 포기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나는 물었다. 언제 사는 게 가장 재미있었느냐고,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한번 찬찬히 되짚어 보라고.
그녀가 대꾸했다. 어떤 행동을 기준으로 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뜬금없을지 몰라도 굳이 따지자면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순간이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 예쁘달까요. 잔뜩 긴장해서는 헛소리를 툭툭 하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얼토당토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기가 죽었다가 다시 설레기는 반복하는 그런 순간들이요. 그럴 때는 나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별 것 아닌 일에도 괜히 신이 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하며 그녀가 말 끝을 늘였다. 그리곤 가볍게 웃었다.
사랑, 사랑이라.
그녀의 이야기 너머로 그려지는 모습은 본 적도 없는 그녀의 오랜 연인의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한 동안, 문득 그녀의 이야기가 떠오르곤 했다. 사랑의 필연적 과정, 사랑이 걸어 나가야 할 길과 사랑의 경계 같은 것들이 예고 없이 생각을 탁탁 낚아챘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오랜 연인 로제와 식어버린 사랑을 유지하는 폴,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어린 시몽의 이야기다. 폴과 함께 하는 어느 식사 자리, 시몽은 치정 사건의 재판 과정을 흉내 내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_1961年
스쳐 지나간 사랑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디로부터 흘러왔든 그 끝에 따르는 것은 결국 고독. 우리는 끝끝내 그 형벌을 피할 수 없다.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에는 노랫말만큼이나 방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절대로 제쳐둘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폴의 고독, 연인의 품에서 마주하는 고독이다. 사랑이라 말하기도, 아니라 말하기도 어려운 관계. 놓아줄 자신도, 함께 할 자신도 없는 관계. 서로의 품 안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무수하다. 서로의 손을 놓으면 그만일 그 단순한 결단 앞에서 우리는 늘 혼란하다. 함께한 시간이 아쉽고 남겨진 미래가 두려워서, 꼬리를 무는 외로움과 불안을 쉬이 끊어내지 못한다. 캄캄한 터널 끝에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짐을 꾸리고 또 누군가는 고독의 곁을 지키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정답이라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들은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사랑을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지만 그 기쁨을 잃고 고독해진 그녀 역시, 어쩌면 서울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로제, 또 다른 폴인지 모른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다시 기름을 끼얹어야 할 시기일지도, 혹은 인생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올 문장은 후회 없는 이야기이길, '운명이려니' 보다는 '운명이기에'로 시작되는 이야기이길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