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아마 결혼하게 될 것 같아요.」
내가 대답했다.
「어머, 축하해요. 그렇다면 이제 헌법 제정을 시작해야겠네요.」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헌법 제정 따위를 읊으며 사랑을 논하진 않았다. 조금 더 단순하게 사랑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달라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되짚어 봐도 분명한 경계는 없다. 떠오르는 조각은 몇몇 문장들이다. 곽정은 작가가 언급한 하드웨어를 합의하고 소프트웨어를 논하지 않은 결혼의 실패.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으며 쓴웃음을 짓던 순간 같은 것들. 하지만 그 문장들을 단박에 장기기억장치로 넣어버린 공감대는 훨씬 더 이전에 완성된 것이 분명하다.
사실은 그렇다. 완성된 것은 '소프트웨어를 합의보지 않은 결혼과 그에 딸려오는 불행'을 보고 들으며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하나의 명제다. 간접 경험이 누적되어 만들어 낸 힘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뾰족하다. 간단한 이유로 그렇다. 어딘가에 늪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앞으로 걸어가야만 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운 것이다. 존재는 알지만 본 적은 없다는 미지의 무엇처럼 겁이 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과 인간관계 삼부작을 통해 지극히 정상적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과 개인이 사귈 때에 딸려오는 생경한 생활상을 반어적으로 정의한다. 계층과 지역과 집안의 특성이 뒤섞여 구성된 세계가 하나가 될 때 펼쳐내는 광경은 언제나 우리의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든다. 빵에 잼을 바르는 방식부터 식재료를 고르는 일까지 무엇하나 정돈되지 않은 서로의 세계. 무의식적인 요소들의 집합을 정상 상태로 여기는 한 개인의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 정말이지 나는 알랭 드 보통의 놀라운 통찰과 말장난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뚫고 들어가 우리 인생의 2막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 사용한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 넣고 머리를 털어내는 나와 그의 지극히 정상적인 방식들. 이것이 바로 헌법 재정의 핵심이다.
동거의 과정 없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누군가의 영상을 잠시 보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이니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은 없다. 나는 관계의 포기를 쉽게 배운다는 점과 더불어 몇몇 이유 때문에 동거를 선호하지 않지만 결혼 전 동거가 필수라는 그들의 논지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세금을 제 날짜에 내는지와 화장실 쓰레기통을 며칠에 한 번 비우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연인의 집 현관 너머로 발 디딜 틈 없는 쓰레기 더미를 마주한 그 날. 나 역시 북어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찰나의 시간 동거의 필요성을 체감하기도 했다.
냉장고에 포스트잇을 한 장씩 늘려가며 룰을 만드는 일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소프트웨어를 합의할 수도 있다. 상대와 날 것의 모습을 적당히 공유하고 있다면,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받아들이기 위한 의지가 쌍방에게 있다면, 덧붙여 넉넉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세금 고지서를 펼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삶을 공유할 수 있다. 나는 연인과 동거를 하지 않지만 상대가 화장실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와 저축과 대출 상환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알고 있다. 퇴근 후 옷을 어떻게 던져놓는지와 배달음식의 뒤처리를 어떻게 하는지도 알고 있다. 심지어 서로의 통장 잔고까지 아주 적나라하게 알고 있다. 육아와 커리어와 각 집안 어른들에게 어느 정도의 용돈을 드릴지에 대해서도 종종 상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룰의 1계명은 서로에게 날 것을 보일 용기다. 연인의 사정은 연인만이 안다고 했다. 부부 역시 그렇다. 그래야만 한다. 살아가며 내가 마주한 가장 슬픈 부부의 이야기는, 부부의 사정을 모르는 부부의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날 것을 숨긴 채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순서에 맞춰 결혼한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으로 흩어질 때 나는 참으로 속이 상했다. 부인의 이야기는 부인의 지인을 통해 동쪽으로 흘렀고, 남편의 이야기는 남편의 지인을 통해 서쪽으로 흘렀다. 서로의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서로뿐이었다. 그들은 가뭄난 논밭 같은 사이가 되었고, 나는 헌법 제정에 대한 신념을 가훈처럼 되짚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정상적인 서로의 방식을 죽었다 깨나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한 개인을 놀랍도록 피폐하게 만들었다.
결혼을 하게 될 거라는 그녀가 물었다.
「그런 게 꼭 필요할까요.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텐데요.」
아, 내 동생이었다면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주었을 텐데. 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구박을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 테지.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더 이상 덧붙일 말은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것은 그녀의 선택이다.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앞둔 우리의 선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