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 아이였을 적에는 그런 낙으로 종종 시간을 채웠다. 후미진 공간을 찾아 누군가가 버려놓은 등받이 없는 의자나 주전자 같은 것을 낑낑 가져다 놓고는 나만의 비밀 공간이라며 뿌듯해하곤 했다. 그곳은 대개 학교 경비실 뒤편의 좁은 공간이거나 산 등성이에 덩그러니 놓인 정자 따위 였고 그곳에서 나는 만화 주인공을 따라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거나 1인극 연기를 하거나 쭈그려 잠을 잤다.
2008년 즈음 꿈꾸던 이층 침대를 샀다. 천장과 침대 사이에 살라미처럼 끼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허리를 포기한 채 좌식형 이층 침대를 골랐고 우리는 카드값이 아깝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다. 바닥을 시커먼 부직포로 박은 매트리스 아래에 앉아 대학 과제를 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가계부를적는 습관을 들이던 날들. 현실은 인생의 도약기를 빙자한 암흑기였지만 그곳에 들어앉아 있으면 좁고 어둑한 세상이 시답잖았고 그것은 의외의 안도를 주었다. 하지만 후미진 공간에 대한 갈급함은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졌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다리가 불편하고 허리와 꼬리뼈가 아파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던 즈음 우리는 자연스러운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나사를 분해해 공간을 없애는 아주 단순한 이별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나만의 공간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이제 후미지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가 되었다.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눈치 보지 않고 길고양이를 도울 작은 공간이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간절해지는 것은 단단한 마음의 공간이다. 황희연 작가의 저서에서 동화작가 이반디는 말했다.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쪼그려 앉아 글을 쓰면서도 '나에게는 아무도 모를 나만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뇌었다고. 그 세계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동화작가는 될 수 없었을 것이라 고백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등받이 없는 의자와 뚜껑이 없는 주전자와 이제는 사라진 이층 침대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어째서 그리 후미진 곳을 사랑했을까. 어쩌면 그건 태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엄마의 자궁은 어둑하여 보호받는 곳이었으므로 열 달의 시간에서 몇 걸음 떼지 못한 아이들은 자연스레 태초를 닮은 공간, 커튼의 뒤편과 천을 길게 늘어트린 식탁 아래를 사랑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더 이상 커튼 뒤에 숨지 않는 사람들이 된다. 삶은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멀어지는 여정이므로. 빛을 향해 걷다가 결국은 흙이 되어 널찍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종종 생각한다. 지금 내가 마주하는 세계는 결국 어린 시절의 나에게 받은 것일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어린 시절엔 어려서 몰랐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모르지 않았다. 돈을 버는 법은 몰랐지만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았고 좋은 친구를 사귀는 법은 몰랐지만 상대가 좋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 나는 한 평생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던 것만 같다. 보호받는 마음 안에서야 위로와 창조가 가능했던 나는 후미진 곳을 찾아 자꾸만 들어앉았을 뿐이었다. 마법을 쓸 줄은 몰랐지만 상상은 할 수 있으므로. 바다와 양들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즐거웠으므로. 어쩌면 커튼 뒤의 아이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 변한 것이 아니고 집값을 걱정할 나이가 되어서가 아니고, 우리는 그저 우리인 채로 어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