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대가를 치르는 환상

by 지수연

아무리 발광을 해도 지긋지긋한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벗어났느냐 하면 솔직히 그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글을 썼다가 지우고 완벽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친다. 부족한 나 자신을 쿨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결승전을 향해 달리는 내 다리를 파삭 부러트리는 원인이 바로 완벽주의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키우는 치와와는 상당한 쫄보다. 산책을 나갈 시 게걸음으로 걷는 것은 기본. 해가 진 후에는 거의 정확하게 옆으로 걷는 수준이 된다. 길고양이가 자동차 아래에서 호다닥 달려 나오거나 자동차가 클랙션을 빼액 누르면 그녀는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소스라치며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접종을 위해 병원에 방문했던 어느 여름. 발버둥치는 치와와의 등짝에 겨우 주사를 놓은 수의사가 말했다. 애기가 상당한 쫄보네요. 그리곤 말을 이었다. 확률적으로 보면요, 보통은 주인을 닮더라고요. 나는 상당한 연기력을 펼치며 (하하하하 그런가요) 내적 정색을 감추었지만 솔직히 그의 농담이 하나도 우습지 않았다. 날도 더운데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내면의 목소리가 말했다. 깔깔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에 진지해져 버리는 이유는 하나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정말 어마어마한 쫄보다.


겁이 많은 사람에 대한 통속적인 이미지가 있다. 쭈뼛쭈뼛 제 할 말을 못 하는 수동적인 사람. 수줍음이 많은 사람. 나는 그 반대의 인간이다. 빠른 걸음으로 장군처럼 걸어 다니며 사람들 앞에서 와하하학 하고 웃는다. 싫은 티도 좋은 티도 팍팍 내어 생각이 빤히 보인다. '저는 그거 못해요. 무서워서' 하는 나의 말에 사람들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의외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나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완전히 그렇다. 놀이기구, 비행기, 자동차, 벌레, 물,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이 두렵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치부를 들켜버리는 내 모습과 완벽해야 하는 분야에서 불완전한 나 자신.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나는 줄리아 카메론이 말한 '안전이란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환상'이라는 표현을 아주 좋아한다. 한계치를 정해두고 안주하고 싶은 매 순간, 정통으로 뒤통수를 휘갈겨주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안전을 위해 치렀을 수많은 대가를 떠올려본다. 안개처럼 사그라든 수많은 기회들을 상상해본다. 그래서, 그렇게 얻어낸 안전이란 것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는 겁이 났다.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자신 있다 생각하는 분야에서 부끄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한계를 정해두었다. 한계치의 안쪽은 안전했다. 물이 무서워 산에 사는 사람처럼 한계치 너머로는 발도 딛지 않았다. 어쩌다 슬쩍 내민 손 끝에 실패의 기운이 느껴지기만 해도, 어이쿠 선을 넘을 뻔했군, 익숙한 자리로 돌아왔다. 열정도 없지만 좌절도 없는 곳. 성장도 없지만 실패도 없는 곳.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이 될까.


무엇이 되긴 무엇이 되겠나. 기어코 무엇도 되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허무하게 흘려보낸 시간의 가치를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한 채로.


이십 대 중반 즈음 모 가수의 콘서트 코러스 세션을 맡아 전국투어 공연을 다닌 적이 있다. 정해진 인원으로 스물몇 곡의 넘버를 소화하려면 댄서가 무대 장치도 치우고 코러스가 연기도 하는 식의 진행이 당연한 일이었다. 몇 회의 공연이 진행된 어느 날, 그림자 연기와 보컬 솔로를 담당하던 코러스 세션에게 가수가 호통을 쳤다. 그녀의 연기와 보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끝에 지목된 사람은 나였다. 너도 소프라노 파트니까 다음 공연부턴 네가 해라. 알겠지. '아, 아니요 모르겠는데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나는 소프라노 파트가 아니었으며 연기의 ㅇ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다음 공연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얘, 너 로보트니, 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의 울렁증은 극에 달했다. 완전히 지옥이었다. 그렇게 이십여 회의 투어를 더 소화한 후 나는 공연을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 들어온 세션 제안은 대부분 거절했다.


가수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프로였을 뿐이다. 돈을 주고 그녀의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최고의 것을 보여주고 싶은 프로의 욕심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실패한 나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연기와 소프라노 보컬을 잘 소화하지 못한 것을 실패라 여겼다. 과연 그럴까. 이제와 돌아보면 연기와 관련 없는 사람이 연기를 못하는 것과 소프라노 파트가 아닌 사람이 소프라노 파트를 자연스럽게 소화하지 못한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실패이기 이전에 어쩔 수 없는 과정과 결과였던 것이다. 사실 진짜 실패는 실패가 아닌 척 숨겨져 있었다. '그 이후로 들어온 세션 제안은 대부분 거절했다.' 바로 이것이다. 나는 그저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겨웠던 것이다. 안전의 손을 잡고 걷는 수순은 이것이다. 손쉬운 포기와 성장의 사전 차단.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은 안락한 환상으로 기어들어가기 마련이다. 그 안락한 환상은 노년의 재벌이 전재산을 주어 바꾸고 싶다는 청춘의 시간이며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미래의 가치다. 그것들을 버리고 얻어낼 안전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가져다줄까.


나의 치와와는 매일 저녁 가벼운 산책을 한다. 그녀는 바깥세상을 걸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동서남북으로 튀어 오르기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산책 시간을 고대한다. 목줄을 꺼낼 때마다 파닥파닥 흔들리는 그녀의 꼬리가 명백한 증거다. 소스라치며 뛰어오를 두려움과 그것은 넘어서는 기쁨을 동시에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건 개에게 배워야 할 인생의 지혜다. 두려움을 견뎌내며 계속 산책을 하는 것.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 누가 알겠나. 우리의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실패의 끝에 무엇을 만나게 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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