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면 괴로운 극장의 기억
나는 영화뿐만 아니라 극장도 좋아한다. 극장에 관한 추억도 많다. 하지만 꼭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해프닝도 많았다.
어릴 적, 처음 갔던 삼류극장에서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게다가 그곳 화장실에는 무서운 형들이 많아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우리들은 소변을 꼭 참고, 담배 연기 때문에 뿌옇게 된 화면을 힐끗거려야 했다. 그야말로 뒷골목 어른들의 세계였다.
추운 겨울, 춘천에 갔다가 <체인 리액션>(앤드류 데이비스, 1996)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극장에서는 난방을 틀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얼음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 벌벌 떠는 모습을, 나 또한 벌벌 떨면서 본 기억이 난다. 두 손 모아 입김을 호호 불었다.
<람보3>(피터 맥도널드, 1988)에 관한 기억은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때 나는 옆에 앉은 건달 아저씨가 무서워서 (혹시라도 팔이 닿을까 봐) 두 시간 내내, 차렷 자세로 영화를 봐야 했다. 팝콘도 먹지 못했다. 그런데 불이 켜지고 보니 극장에는 친구와 나, 그리고 건달 아저씨(와 그 일당들)뿐이었다. 텅텅 빈 다른 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봐도 되는 걸, 그때는 반드시 지정된 곳에 앉아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아마 건달 아저씨도 황당했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이제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너무 속상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 하지만 그건 엄밀하게 말해서 극장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극장에 갔을 뿐이니까. 어떻게 보면, 극장은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준 것이다. 착하고 끈기 있는 친구처럼.
대학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할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영화감독이 되려면 시나리오를 잘 써야 하니까, 일단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 후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주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다. 직장 생활이 바빴을뿐더러, 수업을 잘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쯤 마실 다니는 기분으로 강의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금세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졸업 심사를 받을 때가 왔다.
당시 내 지도교수님은 70~80년대 드라마와 영화에서 명성을 드날린 노 작가님이었다. 역사극이 전문이었고 강력한 이야기 구조를 강조하셨다. 나이가 들어서도 매우 정력적으로 활동하셨는데, 인사동에 따로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 봄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 나는 시나리오에 대한 코멘트를 듣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모호한 공기가 주위를 둘러싸고 안 좋은 쪽으로 운명이 흐르는 것 같은 날. 기차에서 잠깐 졸았는데 머리도 아프고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런 것들은 늘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니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은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탁자에 내 시나리오를 집어던지셨다. 세상에나. 처음에는 당황했고, 조금은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선생님을 보면서―핏대가 빨갛게 올라와 팽팽해지더니 툭 튀어나오셨다―‘아, 이러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시면 어떡하지?’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잘못되시면 그 모든 비난을, 시나리오를 너무나 못 쓴 내가 다 받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서야―그렇다. 무려 두 시간이었다―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혼난 적이 있었나? 더구나 내 창작물이 형편없다고 혼났다. 혼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횟집의 생선이 되었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하고 싶었던 영화, 그래도 시나리오 정도는 곧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나자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처참했다. 부끄러웠다. 숨고 싶었다. 지금도 선생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던 동기 여학생의 눈빛이 생각난다. 몰래 힐끗거리다 결국 창밖으로 눈을 돌리고 말더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발을 떼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낙원상가 앞에 서 있었다. 당시 그곳엔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 나는 극장 라운지의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프로그램을 바라봤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잠깐 망설였던 것 같다. 지금 영화를 볼까, 그냥 집으로 갈까. 아니면 뭘 하지? 사실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었다. 차라리 주성치 영화 같은 게 좋은데. 아니, 영화 같은 건 안 보고 싶어. 어떤 영화를 봐도 마음만 아플 뿐이야.
하지만 결국 극장에 들어갔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누구에게 진다는 거지? 선생님께? 아니면 밑바닥까지 떨어진 나한테? 모르겠다. 뭐든 꾸역꾸역 욱여넣어야 했다. 미안해요, 조도로프스키.
상영작은 <엘 토포>였다. 솔직히 영화를 제대로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스크린에 선생님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고, 음악과 함께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다. 다시 혼나는 기분이었다. 불이 켜지고 너덜너덜해진 상태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옥상 난간에 서서 무심코 인사동을 바라봤다. 그런데 멀리 선생님 사무실이 보이는 게 아닌가? 망할. 그 빌딩은 마치 <반지의 제왕>(피터 잭슨, 2001)에 나오는 사우론의 탑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싫었다. 도망치듯 다시 극장에 들어갔다.
두 번째 상영작은 <홀리 마운틴>(1973). 지금도 <홀리 마운틴>의 정확한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 영화는 예수님에 관한 은유였을 것이다. 아니면 종교적인 상징으로 가득한 허깨비거나. 등장인물들은 때때로 성기를 내놓고 다녔는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또한 벌거숭이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죽어버린 내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선생님을 원망하고, 다시 돌고 돌아와 나 자신을 비난했다. 애초에 자존감 같은 게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결국, 나는 그 학기에 졸업하지 못했다. 시나리오는 계속 퇴짜를 맞았다.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고, 다음 학기에도 졸업할 수 없었다. 마침내 선생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고, 결국 교수님의 사무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비참한 기분으로 다른 지도교수님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새로운 지도교수님은 내가 <홀리 마운틴>을 보던 날, 신랄하게 비판받았던 그 시나리오를 매우 좋아하셨다. 그리하여 결국 처음에 쓴 시나리오로 졸업하게 되었다. 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낙원상가 옥상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떠올리면, <홀리 마운틴>을 상영하던 차가운 봄이 생각난다. 겨울보다 더 혹독한 날씨였다.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이 추웠다. 그래도 그곳을 다니면서 좋은 영화도 많이 봤다. 무성영화의 걸작인 <선라이즈>(F. W. 무르나우, 1927)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차가운 복수극 <겟 카터>(마이크 호지스, 1971)를 보던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킬리만자로>(2000)의 오승욱 감독님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금발 소녀의 기벽>(2009)과 <그림자 군단>(장 피에르 멜빌, 1969)까지. 아마도 나는 옛날 극장에 열광했던 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극장이, 또는 영화가 참혹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친구들이 잘못한 건 없지만.
이후 다시는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낙원상가에 간다. 그리고 옥상에서 선생님의 사무실이 있던 빌딩을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그날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당시 몇 차례나 선생님을 찾아뵈었지만 한 번도 따뜻한 논평을 듣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무언가가 선생님을 화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얼굴을 보거나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으셨나 보다. (모든 게 다 짐작일 뿐이지만.) 이제 와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인생의 ‘어떤’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만남이 있듯, 좋지 않은 만남도 있는 법이니까. (그분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3월의 차가운 바람, 불어 터진 밀가루 반죽 같은 내 머리, 선생님의 입가에 말라붙은 하얀 침, 그리고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들.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로 남아있는데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