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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트루 로맨스

겁나지만, 이를 악물고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페트리샤 아퀘트가 주연한 영화 <트루 로맨스 true romance>(토니 스콧, 1993)는 쓸쓸한 루저들이 만든 회심의 역전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디트로이트의 한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클레어렌스(크리스찬 슬레이터 역)는 생일날이면 심야 극장에서 무술영화를 보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 생일날, 콜걸인 앨라바마(페트리샤 아퀘트 역)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클레어렌스는 그녀의 포주인 드랙슬(게리 올드맨 역)을 죽인다. 하지만, 그가 챙겨 온 앨라바마의 옷가방에서 마약이 나오고, 둘은 LA로 건너가 마약을 돈으로 바꾸려 한다. 그리고, 이들을 쫓는 갱스터들과 경찰들의 얽히고설킨 이전투구 속에서 운명적인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전심으로 용기를 내야 할 상황과 만날 때가 있다.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무리 두려워도 두 눈을 딱 감고 해치우는 길 밖에는 없다. 그러나 주책맞게도 심장은 드럼을 때리듯 쿵쾅거리고, 다리는 아카시아 나무처럼 떨린다. 입술에서는 침이 마르거나 혹은 하염없이 침이 고일 것이다. 귀는 멍멍한 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달려 나가야 한다. 운이 좋다면, 한 번의 용기와 시도로 원하는 것을 얻겠지만,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다.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영화 속 클레어렌스 또한 그러하다. 처음으로 최고의 여자를 만났나 싶었는데, 그녀는 생일선물로 배달되어온 콜걸이었다. 거기다 악독한 포주가 뒤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true romance)을 하게 된 클레어렌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심호흡을 하고 드랙슬을 만나러 갔을 때나, 드랙슬을 죽이고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 모습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약간은 겁쟁이인 녀석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히어로가 아니고, 현실은 만화와는 다르다. 겁이 나고, 초조하고, 솜털이 바짝바짝 선다. 

눈물이 날정도로 귀여운 이 커플은 디트로이트에서 포주를 죽이고, 마약을 처분하기 위해 LA로 질주한다. 그리하여, 단번에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사건 속으로 연속해서 들어가게 된다. 주저하지 않고 무겁지 않게, 사랑에 취해 경쾌하게 밀고 들어간다. 그리고 사랑을, 행복을 쟁취한다.      


이 영화는 이들의 행보에 따라 겨울의 디트로이트와의 여름의 LA가 두 개의 세계처럼 이어지고 있는데. 도시에 따라 태양광의 영향인 듯한 화면의 색감이 훌륭하게 대비되어 인상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더구나 시종일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한스 짐머의 음악은 잊지 못할 감흥을 준다. 수십 편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한스 짐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영화 곳곳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향연은 관객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간다. 사무엘 L. 잭슨과 게리 올드맨과 데니스 호퍼, 크리스토퍼 월큰, 브래드 피트가 코너를 돌 때마다 등장하므로 잘 살펴야 한다. 크레딧을 보면서 도대체 발 킬머는 어디에 나왔는가?라고 의문을 터트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로 내가 그랬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쓰고, 토니 스콧이 연출한 <트루 로맨스>는 군데군데 엉성한 설정과 무리하게 전개된 이야기의 덜컹거림도 보인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좋다. 헉헉거리는 클레어렌스의 눈빛이, 힘에 부치는 표정과 겁나 죽겠으면서도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귀여운 풋내기들의 반란이 나는 좋다. 그들의 승리는 곧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 언제 세상이 약자에게 호락호락했는가, 그러므로 영화 속 클레어렌스와 앨라바마가 잘난 놈들을 물리칠 때,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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