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와 다이하드 사이에서

그러니까 눈치를 챙기셨어야죠.

by 솔라리스의 바다

중학교 3학년 여름, 친구와 함께 본 <태양의 제국>. 사실 그 영화는 우리가 극장에서 본 두 번째 영화였다. 그 친구와 처음으로 같이 봤던 영화는 <람보 3>(피터 맥도널드, 1988)다. 나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무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우리는 종로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종로는 서울의 중심이니까. 단성사와 피카디리, 서울 극장이 삼각형처럼 모여 있는 종로 3가는 영화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렇게 찬바람이 불던 1월의 어느 날 아침에 우리는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126F1B10ABCE9D9F9E <람보 3>는 아직도 케이블 TV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피카디리 극장에서는 <람보 3>가 개봉 중이었다. 우리는 람보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람보 2>(조지 P. 코스마토스, 1985)를 세 번인가 봤다. 극장에서 한 번, 비디오로 2번. 친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람보가 양손에 기관총을 들고 소련 헬기 앞에 서 있었다. 아마 저 헬기는 곧 가루가 될 것이다. 내기를 해도 좋아. 하지만 맞은편 단성사에는 생전 처음 보는 배우가 러닝셔츠만 입은 채 울상을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영화였다. 제목은 ‘다이 하드’. 뭐야 저건. 죽으려면(die) 열심히(hard) 죽어라, 그런 뜻인가? 우리는 코웃음을 쳐주고는 람보형을 영접하러 피카디리 극장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우리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던 것이다. 장발에, 염색에, 가죽잠바까지 한눈에도 노는 형들처럼 보였다. 우리가 앞에 서자, 껌을 씹다가 말고는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저절로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친구보다 앞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허락된 용기의 절반 이상을 그때 사용한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착한 목소리로 표를 내밀며, 이곳이 우리 자리라는 것을 확인시켰다. 형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는 다시 우리를 쳐다봤다. (그때 너무 무서워서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다) 잠깐 동안이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내 앞에 있던-문신도 있었다-형이 말했다. “두 칸씩 옆으로 가라.” 세상에, 할렐루야. 형들이 모두 일어나 두 자리씩 옆으로 갔다.


나와 친구는 그 옆에 옹기종기 앉았다. 내가 (형님들과 맞닿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순전히 좌석 번호가 그랬기 때문이다. 친구는 절대로 나와 자리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나는 혹시라도 형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 가급적 옆자리의 형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양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등받이에서 허리를 떼고 앉았다. 덕분에 팝콘은 가끔 하나씩 녹여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 시간은 너무 느리게 흘렀다. 영화도 재미없었다. 그게 아닌가? 재미없었던 게 영화 때문인지 자리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겨우 영화가 끝났을 때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나중에 친구는 내가 어찌나 긴장을 하던지 자기도 덩달아 영화를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콜라와 팝콘은 자기가 다 먹은 거 같던데? 어쨌거나 무사히 영화가 끝나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객석에 불이 켜졌을 때,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큰 극장에 관객은 우리와 우리 옆의 형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아까 형들이 왜 그런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는지 이해가 됐다. 자리가 텅텅 빈 극장에서, 빈 좌석 아무 곳이나 골라 앉아도 되는데, 얘들은 왜 우리 옆에 와서 자리까지 옮기라고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극장을 원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날 아침 한가한 매표소의 누나는 좌석 순서대로 표를 끊어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번호대로 앉았을 뿐이고. (형들도 마찬가지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어쨌거나 나와 친구, 고생 많았습니다. 형들도 고생했어요.

하지만 감사함도 잠시, 우리는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민망하기도 했고, 괜히 어물거리다가 화장실로 끌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사람은 역시 눈치가 있어야 해. 그날의 교훈이었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이하드>(존 맥티어넌, 1988)를 보고 난 뒤에는 순간의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액션 영화의 명작 <다이하드>를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다니,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아, 이것도 눈치가 없어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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