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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헤더스

기다려 봐, 내가 담뱃불을 붙여줄게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녀석,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자신의 라이벌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아니면 나보다 늘 잘하는 그 녀석에게 외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는 순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뒤돌아서서 저주하고 투덜거린다. 


십 대 시절의 학교는 묘한 곳이다. 적어도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온갖 질투와 열등감과 우월함과 폭력과 서열과 재미와 이성의 들뜸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도 무척이나 심하다.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찰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머리가 제법 커진 애들은 특히 그런 생리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반대쪽의 아이라면 상황은 무척 나쁘다. 


<헤더스>는 외톨이의 영화다. 루저의 복수극이다. 베로니카(위노나 라이더)는 교내 퀸카 그룹인 “헤더스”에 어렵게 가입하지만, 그녀들의 심부름만 하는 하녀 같은 처지이다. 이런 베로니카에게 이상한 전학생 JD(크리스찬 슬레이터)가 나타난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소외감은 JD를 통해 위험한 방향으로 증폭되기 시작한다. JD는 베로니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아이들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JD는 가공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JD는 제임스 딘의 약자다. 미국에서는 JD라는 말이 괴짜로 쓰인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얼핏 보면, 미국의 교내 총기난사사건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진심은 다른 곳에 있다. 이 영화는 외로움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JD역을 맡은 크리스찬 슬레이터는 이 영화를 통해 발군의 캐릭터를 보여준다(그가 가장 멋진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학교 안에서 이상한 공기가 감도는 아이, 아이들이 은근슬쩍 피하는 아이, 그는 결국 살인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연쇄살인을 다루면서도 살인의 쾌감을 전파했던 할리우드의 영화들과 다르다. JD의 행위에서 우리는 쓸쓸함과 서글픔을 느낀다. 그의 얼굴에서 외로움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베로니카가 JD와 처음 만나는 교내 식당 장면이다. 늘 우중충한 바바리코트를 입고 다니는 JD는 교내 식당의 구석에서 언제나 그렇다는 듯이 여유 있게 외톨이인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리고 엔딩 장면, JD는 마지막으로 베로니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잠깐 기다려 봐, 내가 담뱃불을 붙여줄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스포일러다) 쿨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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