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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포레스트 검프

가슴 터질듯한 그 친구의 달리기

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처음 만난 건, 하릴없이 우울하고 생각 없이 게을러서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카프카의 변신 벌레처럼 눈총 받고 허우적거리던 19년 전 이맘때이다. 그 해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고, 엄청난 무더위가 찾아왔었다지만 나는 다 관심 없었다. 

편하고 게으르고 힘든 것을 싫어했고 아무것에도 무관심했던 나는 못생긴 돼지처럼 마음의 비만을 앓고 있었나 보다. 차가운 가을의 허전함을 좇아 들어선 극장에서 만난 이 친구, 포레스트 검프의 사랑과 우정과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투명함에 그만 나는 심하게 베이고 말았다. 나는 울었고, 울었고, 뛰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큐 75의 포레스트 검프와 그가 겪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는 바보와 정상인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향해 뛰어가며, 우연하게도 세계사에 기록될 역사적 사건마다 등장한다. 여기에 아플 정도로 순수한 그 친구만의 사랑이 이어진다. 밉지 않은 포레스트 검프의 시선 속에서 역사적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그 권위를 무장해제당한다. 더불어 검프처럼 지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평균적 인간으로서 우리의 우월감과 잘난 척도 미련 없이 기쁘게도, 허물어져 버린다. 



당시 포레스트 검프의 순수함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라는 포레스트 검프 엄마의 대사가 오래오래 회자되었고, 다음 해에 개봉한 <중경삼림>(왕가위, 1994)과 함께 한동안 달리기 열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탄탄한 구성과 시나리오는 드라마를 살찌웠으며, 뛰어난 CG 작업을 통해-<효자동 이발사>(임찬상, 2004)보다 훨씬 먼저-포레스트 검프가 과거 역사 기록물 속에 등장하는 듯한 영상을 말끔하게 재현하였다. 또 시대를 풍미한 걸작들로 엄선된 OST는 무려 2개의 CD 분량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후덜덜)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이 영화로 <필라델피아>(조나단 드미, 1993)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말미에는 <식스센스>(M. 나이트 샤말란, 1999)의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어린 아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스무 살의 나를 돌아보면, 한심했다. 나태했는데, 그게 자유분방한 삶이라고 착각했다. 이 사람, 저 사람 기웃거리면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포레스트 검프를 만났다.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당시 명보극장 맨 앞줄의 가장자리에 앉아, 11월의 바람과 함께 영화를 탐닉했다. 멍청한 나였지만,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물론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을 바보로 묘사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런 점도 진지하게 이야기해볼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레스트 검프>가 좋다. 검프의 얘기를 듣던 제니가 나도 너와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자 검프가 "You were(너도 있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스무 살에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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