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해방일지

뒤늦게 본 <나의 해방일지>와 견딤에 대하여

by 솔라리스의 바다

이 드라마는 경기도 산포(가상의 도시)에 사는 기정, 창희, 미정 삼 남매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상을 기반으로 한다. 그 삶 속에서 사랑이 찾아오는가 하면 힘겨운 직장생활을 이어나간다.


돈을 버는 건 힘들다. 때론 더럽고 치사하다. 내 단편영화를 도와준 어떤 촬영감독님은 돈을 받지 않으셨다. 돈은 상업 현장에서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현장에서는 "더러운 꼴을 보기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정과 창희와 미정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더러운 꼴을 보며 돈을 번다. 하루를 겨우 버틴다. 드라마의 뒷부분에서 좋은 것을 끌어모아 하루에 5분이라도 좋은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은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버스,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한다. 직장에는 "이빨 하나하나에 못됐음이 쓰여있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내가 올리는 모든 서류를 지적하고 무시하는 상사가 있으며, 같이 숨 쉬는 것도 싫을 정도로 얄미운 선배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감히 그만두지 못한다. 시지프스처럼 영원히 돌을 밀어 올린다. 그리고 힘들어서 운다. 술을 마신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모르겠다. 나도.


하지만 대개는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다가 쓰러진다. 옆의 누군가가 '그러다가 죽는다'라고 경고하지만 듣지 못한다. 죽거나 혹은 퇴직할 때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술을 마시고 저주를 하면서 계속 일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바보일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 사이클 안에서 '견딤'으로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 끝에 퇴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창희가 그랬고 미정이 그랬고 마침내 구 씨가 그랬던 것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