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 약간 모호하다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권오승/김재훈, 2025)를 봤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 총기가 자유롭게 풀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가상의 상황을 기반으로 한다. 마치 악마의 실험과도 같다.
사실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가 종종 있었다. 분노와 갈등이 팽배한 지금의 한국에서 미국처럼 총기 자유화가 되었다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얘기, 게다가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에서 사격훈련도 받았으니 총이라도 있다면 정말 비극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자주 들었다. <트리거>는 그런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꽤 현실적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 총기 청정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최근 급속도로 마약사건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처럼 총기 청정국이라는 이미지도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겠지. (최근의 사제 총기 살인사건만 봐도 그렇다.)
아마도 드라마는 한국의 현실을 배경으로 총이 주어졌을 때의 혼란을 보여주고 총기 사용의 폐해를 그리면서 주인공 이도(김남길 분)의 신념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내려 한 것 같은데... 각 에피소드를 보다 보면, 총을 구해서 복수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악덕 기업에서 산재로 사망한 아들을 둔 엄마의 경우라든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 친구의 경우 등등은 차라리 이런 약자에게 총을 쥐어주는 게 낫지 않나?라는 위험천만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총은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건지,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건지 헷갈린다. (물론 제가 바보여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스포 약간 있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일단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중구난방이라고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섞이고 연결된다기보다는 갑자기 등장했다가 죽으면서 사라진다. 처음엔 비중 있는 역할인 줄 알았던 고시원남이 금방 죽는다든지 문백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이도와의 관계, (이도는 너무 쉽게 문백의 정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문백이 왜 그토록 사람들의 갈등에 관심 있어하는가의 문제(물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파출소장의 선택은 많이 아쉽다. 파출소장이라면 자기 총도 있을 텐데, 꼭 문백 쪽에서 배달한 총을 써야 했나? 등등
이 드라마의 빌런, 총을 무상으로 보급하는 문백(김영광)은 마치 악마와 같다. 인간의 마음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악한 마음을 품게 하는 악마마 인간으로 현현한 것처럼 갈등과 살인을 부추긴다. 오로지 그런 광경을 구경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문백은 드라마 내내 "재미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다른 관점에 보면 <트리거>는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악마와의 싸움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