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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데이

올해 본 최고의 드라마

by 솔라리스의 바다

넷플릭스 드라마 <제로데이>(레슬리 링카 글래터, 2025)를 봤다.

59733084-e588-4ab0-ab1c-e57a2b4d18df.webp 로버트 드 니로가 전직 대통령이자 미국 사이버테러 사건을 조사하는 제로데이위원회 위원장으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1분 동안 모든 웹 사이트 체계가 정지되는 테러가 일어나는 그 짧은 순간 몇 천 명인가가 사망한다. 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인 조지 멀린(로버트 드 니로 분)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사건을 조사하도록 한다. 그런데 이건 굉장히 정치적이고 안전한 선택이다. 이 어려운 조사가 잘 되면 대통령 공이 되고 잘못되면 자신을 잘라내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물론 조지도 알고 있고.


(*스포 약간)

이 사건은 (대개 그렇듯이) 정관계, 산업계, 무정부주의자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 저지른 일이며 조지의 개인적인 사람들도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사건을 파헤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 된다. 특히, 흥미로왔던 점은 조지의 정신 착란에 대한 부분이다. 노회한 정치인 조지의 정신 상태는 온전한가 아닌가. 더구나 그는 재임 기간 중에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다. (자살인지 약물과용인지 불분명하다) 죽은 사람이 눈에 보이고, 중요한 정보를 적은 수첩에는 섹스 피스톨스의 노래 'Who killed Bambi?"의 노래 가사만 가득 적혀 있다. (마치 <샤이닝>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조지 자신은 물론이고 조지의 주변인들 그리고 관객조차도 조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제로 데이는 실제하나? 범인은 있나? 모든 게 조지의 망상은 아닌가? 만약 내가 조지였다면, 식은 땀이 날 것 같았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가 흥미로웠다. 프로테우스라는 신무기도 그럴듯했고. (나중에 그 노래는 아들이 죽은 현장에서 흘러나온 노래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겉으로는 철옹성처럼 보이는 조지의 상처를 알 수 있게 한다) 더구나 조지의 딸, 알렉산드라 보고 있으면, 눈높이는 이상적인 곳에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춘기 아이들의 모습을 극화한 것처럼도 보인다. (천하의 조지도 자기 자식은 어떻게 할 수 없나 보다.)


이제 현대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그것도 온라인으로, 얽힌다.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한 일이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전체를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현상 속에서 개개인의 인간은 부속품으로 사용되고 쉽게 대체된다. 전체 판을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고 취향이 있겠지만, 올해 내가 본 드라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복잡하고 정교한 이야기, 섬세한 캐릭터들, 현대사회의 무서운 이면, 무엇보다 이제 80세가 넘은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 자체를 캐릭터화했다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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