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배우님을 추억함

영화라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배우였음

by 솔라리스의 바다

설마설마했는데 안성기 배우님이 영면하셨다. 늘 한국영화에서 뵐 줄 알았는데 너무 슬프고 아쉽다.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인식하게 된 건, 안성기 배우의 영화부터였다. 초딩 때 TV에서 보여주던 방화(그때는 한국영화를 방화라고 낮춰 불렀다)에는 안성기 배우가 자주 등장했다. 1980년대 최전성기를 누렸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처음 안성기 배우를 만난 건 <고래사냥 2>(배창호, 1985)다. 노숙자 민우 역할로 등장했는데 세상을 초월한 도인 같은 풍모가, 어린 마음에도 너무 멋있었다. 특히, 마트에서 낙지와 생닭을 먹던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허례허식을 깬 자유로움이라고 느꼈다. (그의 풍모를 닮고 싶었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 중 강수연, 안성기 배우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정극에서 만난 건 <칠수와 만수>(박광수, 1988)였다. TV로 봤는지, 비디오로 봤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진지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몰입해서 봤다. <그대 안의 블루>(이현승, 1992)는 낯설었지만 <투캅스>(강우석, 1993)에서는 빵 터졌고 <태백산맥>(임권택, 1994)은 아쉬웠고 <헤어드레서>(최진수, 1995)는 이상했다. 숨 가쁘게 등장한 1990년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안성기 배우의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1999)가 아니라, <남자는 괴로워>(이명세, 1995)다. 나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본 소수의 관객 중 하나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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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가장, 직장인의 비애에 대해 잘 몰랐다.


이후 영화를 공부하면서 안성기 배우가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1960)에 아역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짜 얄미운 캐릭터였다) 그리고 배창호 감독님의 여러 영화에서 만났다. 그중에서도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안성기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잘 살린 순박한 캐릭터, 조감독이었던 이명세 감독님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미장센,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황신혜, 감독님이 어디선가 <희랍인 조르바>에서 캐릭터를 따왔다고 말했던 최불암 배우님의 연기,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촬영(과 롱테이크), 이영길 기사님의 동시녹음. 그냥 생각 없이 봤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4d1476cd6ca4e434f8188f10f743e6c7a932cc3f 어떤 설문조사에서 그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코믹한 영화 1위, 가장 슬픈 영화 1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사실 안성기 배우님의 인상은 앞서 말한 <고래사냥>의 캐릭터, 그리고 맥스웰 캔커피 광고의 모습이다. 바닷가의 바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캔커피를 마시는 건, 당시 초딩이었던 나에게 로망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광고에 쓰인 음악이 너무 근사했는데, 영화 <갈매기 조나단>에 등장했던 닐 다이아몬드의 Be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안성기 배우님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개는 그분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대사 억양 때문이었고 영화에서 너무 많이 소비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실미도> 때의 대사로 드립을 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국민배우이기에 나온 불평이기도 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가실 줄은 몰랐다. 좀 더 중후한 역할로 스크린에서 뵐 줄 알았는데.


몇 년 사이에 멋진 배우님들이 많이 돌아가셨지만, 오늘 아침 안성기 배우님의 별세 소식은 너무 아쉽고 슬펐습니다.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만났던 주연 배우였기에 그 크기가 남달랐던 것 같다. 그곳에서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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