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과 <지옥의 묵시록>을 보다가 든 생각
오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검색하다가 가족 중 누군가 보다만 <중경삼림>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어서 봤다. 좋아하는 영화는 오히려 중간에 시작해서 조금씩 보는 것도 재밌다. 마치 조각케이크를 한 입 먹는 것처럼 말이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니 사건을 집중해서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화면을 보다가 처음 <중경삼림>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1995년 가을이었던가? 지금은 사라진-그 당시 극장은 거의 모두 사라졌지만-종로의 코아아트홀에서 봤다.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나도 영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멋진 영화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밤에는 케이블 TV 채널을 돌리다가 <지옥의 묵시록>을 봤다. 처음부터 시작하길래 채널을 고정했다. 윌러드 대위의 얼굴과 짐 모리슨이 부르는 the end.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것이 끝이다"라는 가사가 뜬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부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다. 마치 브로콜리 너마저가 데뷔해서 처음 부른 노래가 "앵콜요청금지"인 것처럼. 내 친구는 도어즈의 초판 앨범을 중고로 구매해서 (30년 전이었는데 오만 원 정도 줬다고 했다) 새벽에 우리 집 창문을 두드렸다. 내 방에 턴 테이블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새 도어즈를 들었다. <지옥의 묵시록>을 볼 때마다 the end가 떠오르고, 친구가 생각난다. (친구는 예전에 죽었다.)
처음 영화를 좋아했을 때, <중경삼림>을 보고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그 밖의 많은 영화를 찾아서 봤다. 손을 대는 것마다 금광이었다. 영화의 세계는 넓고 깊었다.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씨네 21>을 부지런히 사서 읽고, 개봉하는 모든 영화를 보던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오늘 우연히 <중경삼림>을 만나고 <지옥의 묵시록>을 보다가 처음 영화를 좋아할 때의 내가 생각났다. 오묘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