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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15. 2022

웰컴 투 주성치 월드

<희극지왕>,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의 맛

혹시 케이블 TV에서 주성치 영화를 하고 있다면 시험 삼아 5분만 보세요. 


만약 처음 5분을 견딜 수 있으면, “주성치 월드”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예요. OTT나 유료 채널에 가면 그가 만든 수십 편의 영화들이 여러분을 기다릴 테니까요. 간단한 이야기예요. 그를 받아들이면, 그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5분 만에 바로 토하게 된다면, 그를 깨끗이 잊으세요. 불쾌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하시고 <매트릭스>에서처럼 파란 약을 먹으면 됩니다. 세상에는 주성치가 아니어도 여러분의 오감과 정신세계를 감동시킬 각양각색의 영화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영화만 보고 살아도 우리는 영화를 다 볼 수 없어요. 그깟 주성치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저는 주성치를 좋아합니다. 그의 모든 영화가 사랑스럽습니다. 무지막지한 코미디, 억지스러운 설정, 바보 같은 연기가 좋습니다. 영화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까다로운 입맛이지만, 주성치 영화는 달콤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심형래 감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영화를 찍습니다. 그리고 온몸으로 유치함과 촌스러움과 썰렁함을 표현합니다.     


그 옛날, <희극지왕>(이력지, 1999)을 보았을 때, 저는 주성치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피에로의 미소에 담긴 눈물을 슬쩍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웃음뿐만 아니라 ‘눈물’도 선사합니다. 물론 그것은 멋진 아가씨의 아름다운 눈물이 아니라, 콧물과 코딱지가 범벅이 된 주책없는 눈물이지만.      


그렇다고 <희극지왕>이 슬프거나 심각한 영화는 아니에요. 그냥 주성치는 평소대로입니다. (주성치가 어디 가겠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심금을 울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화 어딘가에 숨겨진 주성치의 진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희극지왕>에서 주성치의 오버하는 연기와 과장된 제스처는 한순간,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을 진심과 결합됩니다. 그리하여 웃기면서도 애잔하고, 유치하면서도 정색하는 아름다운 영화가 됩니다. 


<희극지왕>은 장백지의 영화이기도 하다.


어깨에 힘을 빼고 주성치 영화를 봅시다. 영화란 이런 것. 좀 더 느슨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주성치를 너머 우리의 생활에 감정이입을 해봅니다. 나는 지금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 거지?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걸까? 폼 나는 것은 무엇이고, 유치한 것은 무엇일까? 쉿! 질문은 너무 하지 말아요.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냥 주성치가 그러하듯 콧물의 맛을 느껴보세요. 더럽다고요? 노노, 시큼털털한 그 맛에 바로 우리 유년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순수했을 그때의 정수가. 날름날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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