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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14. 2022

3000마일

조낸, 가는 거야!

영화 <아이다호>(구스 반 산트, 1991)는 쓸쓸했다. 영화 속 거리의 부랑자들은 다른 운명을 갖게 된다. 그곳에 속해 있던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죽는다. 하지만 그의 친구 스코트(키아누 리브스)는 잠깐의 일탈이라 생각하며 다시 제자리로-상류층으로-복귀한다. 아마도 영화가 이어진다면, 스코트는 사장이나 정치인 같은 걸 하면서 ‘나도 한때는 제법 놀았었어’ 내지는 ‘젊었을 땐 뭐, 다 그런 거 아냐?’ 따위의 말을 뇌까리는 돼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자기 안위를 위해 사는 것이다.

     

<3000마일>(데미안 리히텐스타인, 2001)을 보고 나니까, <아이다호>가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두 사람의 경로가 비슷해서 일까?  



이 영화에는 B급 영화의 단골 배우인 커트 러셀(마이클 역)과 한때 미국 영웅주의의 상징이었던 케빈 코스트너(머피 역)가 출연했다. (그리고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망했다. boxofficemojo에 따르면, 6,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총 1,87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러기도 참, 쉽지 않은데.)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추종자인 머피는 일당들과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 축제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로 쳐들어가서 현금을 강탈한다. 하지만, 천하의 악당 머피는 거기서 더 달린다. 같은 일당들을 배신하고 돈을 독차지하려 한다. 한편, 간신히 살아난 마이클은 연분 관계에 있던 시빌(커트니 콕스)과 함께 머피와 맞선다. 그리고 영화는 돈과 여자를 거머쥔 마이클이 평화로운 항해를 하는 노을 진 바다를 배경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머피는 경찰특공대의 포위 속에서 끝까지 총질을 하다가 수백 발 정도의 총탄을 맞고 죽는다. 


아주 나쁜 악당이 죽고 선한 악당이 개과천선하는 영화가 이렇게 별로인 적은 없었다. 악당은 악당답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악당답게 죽어야 한고 생각한다. 죄의 값은 그렇게 치러지는 것이다. 똑같은 악당 주제에 살짝살짝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던 마이클은 머피와의 최후 결전에서 방탄복을 입고선 죽은 척하여-마치, <양들의 침묵>에서의 렉터 박사처럼, <레옹>에서의 레옹처럼-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에 머피는 그 악의 숨결을 내뿜으며 그대로 밀고 나간다. 무모하지만 막 달리기. 그리하여, 최후의 순간에는 고독을 친구 삼아 처참하게 죽는다. 개망나니가 죽었지만, 기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악당의 지조를 지키며 죽음으로 내달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머피 같은 캐릭터가 처음은 아니다. <영웅본색 2>에서 주윤발과 대결하다가 전사하는 상대편 킬러(삼성 라이온즈의 오승환 선수 닮았다)라든가 <헤더스>에서 담뱃불을 붙여주겠다며 자폭하던 JD는 ‘악당은 이렇게 죽는 것’이라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끝까지 질러대는 머피 같은 악당도 찾기 힘들다. 오로지 계산만 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라도, 악당은 악당이면 좋겠다. 알고 보니 돈을 밝혔다든지 그런 거 말고. 아,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런, 2008)의 조커 정도라면,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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