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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12. 2022

인생은 아름다워

그냥 마음을 줘도 되는 영화 1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전자는 귀도와 도라의 연애담이고, 후자는 귀도와 아들 조슈에의 생존기다. 전자가 로맨틱 코미디라면, 후자는 가족영화랄까? 귀도가 계속 나왔더라면, 귀도 연작처럼 다양한 중편영화 모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전반부의 에피소드와 후반부의 에피소드가 교묘하게 이어져 하나의 컷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요즘에는 이를 가리켜 ‘원 콘티뉴이티 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독은 이런 기법을 통해 몇 년의 시간을 하나로 연결했다. 물리적 결합의 냄새도 있지만, 전반부의 따사로운 로맨틱 코미디에서 후반부의 징글징글한 수용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 그 찰나의 순간이 아름답고 슬프다. 잠깐의 휴식 시간 같기도 하고.     


전반부의 마지막 장면: 귀도가 현관문을 여는 사이에 도라는 꽃집으로 들어간다. 귀도도 따라간다.
후반부의 처음 장면: 귀도가 꽃집에 들어간 뒤, 잠시 후 아들 조슈에가 나오면 귀도와 도라가 조슈에를 반긴다.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쇼생크 탈출>(프랭크 다라본트, 1994)과 비슷한 장면이 있다. 수용소의 장교 파티에 동원된 귀도가 자리를 정리하던 중 <오펜바흐>의 LP판을 보고는 도라와 함께 (하지만 따로 앉아서) 봤던 오페라 <오펜바흐>를 떠올리는 씬이다. 귀도는 사람들 몰래, 그리고 도라를 위해 이 레코드판을 튼다. 음악은 장벽을 넘어 도라에게 도착한다. 도라는 잠자리에서 나와 음악이 들리는 쪽을 바라본다. 다른 편에서는 귀도가 있다. 둘은 서로 만날 수 없지만, 컷의 연결을 통해 두 사람이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장면이다.      


귀도가 <오펜바흐> LP판을 틀면, 소리가 벽을 넘어간다. 그러면 잠자리에 있던 도라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창가로 나온다.
스피커를 창가로 향하게 한 귀도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이 씬에서는 귀도와 도라가 서로 바라보듯 장면이 연결되어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음반을 트는 장면이 떠올랐다. 교도소의 방송시설을 이용하여-통제수단으로나 쓰였던 그 마이크로-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이건 앤디가 일으킨 작은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증받은 LP판을 정리하던 앤디는 <피가로의 결혼>을 발견한다. 턴 테이블에 LP를 올려 놓은 뒤, 방송실 마이크를 켠다.
오페라 아리아가 나오자, 교도소 내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스피커를 바라본다. 앤디는 만족한 듯 음악을 듣는다.


언젠가 로베르트 베니니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베니니도 <쇼생크 탈출>의 이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에서 꼭 오마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멋진 장면을 만들어 냈다. 영화를 보면서 <쇼생크 탈출>이 생각났는데, 감독의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흐뭇했다. (그리고 영화를 더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귀도는 <자전거 도둑>(비토리오 데 시카, 1948)에 나오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버지와 같은 연배다. 그리고 <시네마 천국>(주세페 토르나토레, 1988)의 알프레도 아저씨와도 얼추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이들은 같은 이탈리아 하늘 아래에서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는 다른 운명을 따라갔다. 


이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옛날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사연을 생각해 본다. 그러면, 혼자서 이탈리아의 어떤 역사를 조립하는 기분이 든다. 재밌네. 영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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