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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18. 2022

만춘과 가을 햇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생긴 애정의 균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만춘>(1949)과 <가을 햇살>(1960)은 쌍둥이 같다.      


<만춘>이 아내와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사는 아버지가 자기를 돌보느라 결혼하지 않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서 거짓으로 재혼하는 척하는 영화라면, <가을 햇살>은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사는 어머니가, 마찬가지로 어머니 혼자 외로울까 봐 결혼하려 하지 않는 딸을 두고 재혼을 원하는 척하는 영화이다. (<만춘>에서 딸 역할을 맡았던 하라 세츠코가 11년 뒤에 나온 <가을 햇살>에서는 어머니 역을 맡았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하라 세츠코는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이기 때문에 그럴만하기도 하다.)     



다만 <가을 햇살>은 소소한 <만춘>과는 달리, 사별한 남편의 친구들이 미망인인 친구 부인과 딸의 혼례까지 챙기면서 일어나는 소동이 가미되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나는 <가을 햇살>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나아가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못하는, 어떤 틈 같은 게 생겨버렸다.     


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좋아한다. 철두철미하게 답답한 미장센도 좋고, 스틸컷 하나만으로도 오즈 야스지로의 인장을 확인할 수 있는 특유의 색감도 좋아한다. 그리고 그의 단골 주인공 하라 세츠코도 (심히) 좋아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중에서는 특히 <꽁치의 맛>(1962)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 "일본 중산층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회문제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 한가로운 세계"라는 식의 비판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렇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영화도 좋지 않은가, 하는 꽤 느슨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눈감아줬던 그 넉넉함은 사실 우리나라의 비극에 대한 반사이익이었다. 오즈 야스지로의 성공한 중년 남자들이 다니는 회사는 모두 한국전쟁 때문에 기사회생했을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한가롭게 골프를 치고, 맥주를 마시고 회를 집어먹는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얄밉다.    


<가을 햇살>을 보는 내내 동의할 수 없었던 건-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고는 하지만-미망인과 성인이 된 딸로 이루어진 한 독립된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중년 남자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죽은 친구에 대한 의리를 빌미로 그 가정을 좌지우지하려 했다(고 느꼈다.) 친구 딸을 불러 결혼을 종용하고, 그 딸이 홀로 남을 어머니 때문에 결혼을 고사하자, 이번엔 친구의 부인을 재혼시키려 한다. 심지어는 친구들 중 한 명을 남편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오즈 야스지로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 꼴사납고 고약한 행동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결코 만들지 않을 것 같은-이라기보다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영화라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오즈의 영화 속 50-60년대 일본 풍경을 보는 것도 좋다. 60년 전의 회사 사무실 풍경이라든지, 사람들의 생활, 점심시간에는 주로 뭘 먹고 다니는지,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는지, 그런 게 모두 재밌다. 아마 오즈 야스지로가 지극히 사실적인 시선으로 당시 일본 풍경을 묘사한 덕분일 것이다. 그 나라가 우리와 어떻게든 연결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화를 가진 것에 대한 동질감일 수도 있고. 단지 영화예술의 미학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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