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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22. 2022

트레인스포팅

어른 세계의 입구에서

90년대는 재미있는 시대였다. 어찌 된 일인지 전 세계적으로 꽤나 리버럴 했는데,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90년대가 딱 시작하자마자 전에 굳건해 보이던 여러 가치관들이 급속도로 변했다. 정치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도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비해 많이 자유로워졌고, 경제적으로도 엄청 풍요로웠다. (금방 거품이 사라지긴 했지만.) 

90년대는, 물론 나에게도 좋았던 시절이다. 막 여물기 시작한 머리를 굴려가며, 여러 문화 장르에서 다양한 기운(이를테면 인디밴드, 하루키,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 영화제 같은 것들)과 시도가 일어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그 흥미로운 시대는 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적으로는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서.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 ‘시대의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겠지만.

      

<트레인스포팅>(대니 보일, 1996)은 90년대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어떤 영화가 안 그렇겠냐만) 당시의 시대정신과 문화의 자양분을 제대로 받아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살고 있는 다섯 명의 청년들은 마약을 하거나 싸움질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영화는 90년대를 살아가는 가난하고 할 일 없는 젊은 녀석들의 삶.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은 채, 또한 무겁지 않고 약간은 가볍게, 쿨한 눈길로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어른이라기보다는 소년들이다. 아직 사회에서 요구하는 책임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들에게 성장의 때는 오기 마련이다. 소년 시절과의 이별은 어른 세계로의 진입을 뜻하고, 거기에는 소꿉친구와는 함께 할 수 없는 하드보일드 하고 이기적인 공기가 있다.     


데뷔작 <쉘로우 그레이브>(1994)로 기똥차게 등장했던 대니 보일은 두 번째 영화인 <트레인스포팅>으로 젊은이들의 내면과 일상을 충격적으로 잡아내며 본인의 최고작을 만들어 냈다. 또한 한물간 줄 알았던 이기 팝의 쿵쾅거리는 음악과 일렉트로니카의 신나고 음울한 음악이 낡고 이끼긴 도시를 뛰어다니는 이들에게 박력 있는 심장을 달아줬으며, 이완 맥그리거는 2030 세대의 이기적인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참고로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은 기차역에 앉아, 하루 종일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적는 취미를 가리킨다고 한다.     


(스포) 나는 마지막에 웃으며 걸어가는 이완 맥그리거의 모습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같았다. 그래서 더 서글퍼진다. 이것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쩌면 우정이 사라진 새로운 젊은이들의 도래를 알려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지금이야 무한 이기주의가 흔한 일상이지만, 1997년 개봉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 엔딩 장면은 그해 다가올 IMF 구제 금융 시대의 예고이기도 했다.      


나 역시 <트레인스포팅>을 본 해에, 졸업을 하고 군대에 가게 된다. 이로써 리버럴 한 90년대는 끝났고, 어른 세계로 진입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똑똑똑. 그건 아무도 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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