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유령들

서울극장에서의 마지막 관람을 추억함

by 솔라리스의 바다

마치 영화제에 온 것 같았다.


객석은 붐볐고, 몇몇은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에 폐관하겠다고 알렸을 때, 사람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듯, 서울극장을 찾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서울극장에 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나이브스 아웃>(2019)이었다. 그 영화를 보던 무렵,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지인을 만나 영화를 봤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서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그가 떠난 검은 골목 사이로 차갑고 하얀 입김만 떠돌았다. 그 뒤로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폐관 전 마지막 토요일, <로스트 하이웨이>(1997)를 보기 위해 서울극장을 찾았다.


125EBD4D4EF7464D07 <로스트 하이웨이>가 서울극장의 폐관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사실이 재밌다.

이미 직원들은 철수했고, 매점도 문을 닫았다. 경비 어르신들만 남아 관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8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려고 (착각해서) 8층에 갔다가, 텅 빈 극장 한구석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을 방해하기도 했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헤매야 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극장이 길을 바꾸는 것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극장 내부를 구석구석 살펴볼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서울극장에 간 게 언제일까? 확실히 기억나는 영화는 <첩혈쌍웅>(1989)이다.


13110210A8491231B1 비둘기, 성당, 쌍권총... 오우삼이 그린 홍콩 느와르의 완성이자 끝맺음이다.

추석 때 개봉한 이 영화는 매진에 매진이었고, 종로 3가 사거리를 휘휘 돌아 종각역 방향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줄을 섰었다. 그때 함께 줄을 섰던 앞, 뒤의 사람들이 극장에서는 양옆에 앉았고, 괜히 친해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스타워즈 4>(1977)가 재개봉했을 때,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TV에서 보던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본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오프닝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는데, 다른 관객들도 호응해서 함께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뭔가 애정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 가기 전날, <여고괴담>(1998)을 보기도 했다. 공포 영화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사실 어떤 공포영화도 다음 날 군입대라는 사실보다 무섭지 않을 것이다. 종로의 한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몰래 나와,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본 적도 있다. 그리고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를 보는데, 뒤에 있던 어르신들이 상영 내내 ‘무슨 이런 영화가 있냐’며 욕을 했던 기억도 난다. 언젠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보기도 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서울극장이 한국영화사에 꼭 좋은 역할을 했던 것만은 아니다.


미국 영화 직배가 결정되어 한국 영화산업이 혼란에 빠졌을 때, 직배 영화 개봉의 선두에 섰던 일이 있었다. 사실 극장은 미국 영화든 한국 영화든 흥행하는 영화를 상영하면 된다. 그래서 객석을 채우고, 팝콘을 팔 수 있다면 무슨 영화든 상관없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비즈니스의 세계일 것이다. 한국 영화인들은 그때 비로소 비정한 시장의 논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서울극장이 3관짜리 서울시네마타운일 때부터 다녔다. 건너편에 단성사와 피카디리가 있고, 길 건너 세운상가에 아세아극장이 있으며, 뒤쪽 낙원상가에 허리우드극장, 을지로 쪽으로 국도와 스카라, 명보, 중앙극장이 건재하고, 명동에 코리아극장이 있고, 충무로에 70밀리 상영관인 대한극장이 쌩쌩하던 시절이었다. 영화하면 종로였고, 종로 하면 영화였다. 그러나 30년이 흐르는 동안 그 극장들은 모두 사라졌다.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서울극장의 영사실마저 문을 닫았다. 그렇다. 시간은 만물의 포식자일 뿐이다. 시간 앞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도, 나도, 우리는 모두.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서울극장을 아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늘 인류는 새롭게 교체되고,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자신만의 추억을 쌓으며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글은 후일담이다.


마치 싸이월드가 없어지게 되자 뒤늦게 싸이월드를 추억하는 것처럼, 평소에 서울극장을 자주 가지도 않았으면서, 극장이 없어진다고 하자 뒤늦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위해 기차를 탔다. 그리고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극장을 찾았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극장도 할 만큼 했다. 나는 서울극장의 추억을 간직한 채, 다시 생활을 하면 된다. 좋아하는 장소가 사라졌지만, 추억은 남아 있다. 극장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극장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유령처럼 어슬렁거리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만춘과 가을 햇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