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거기 있었다

하지만 저는 이상한 아저씨가 아니었다고요

by 솔라리스의 바다

<아가씨>(박찬욱, 2016)가 개봉했을 때의 일이다.


297fde1d037041d5803865c5b6582a7a9d9f1504 미술이 아름다운 영화였다. 반전도 좋았고.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찬욱을 대단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감독님의 영화는 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보기로 작정한 영화라면 누가 나오는지, 무슨 내용인지, 평점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는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영화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취향에 맞는 영화라면, 백지상태가 가장 좋다.)


그래서 <아가씨>는 그냥 아가씨가 나오는 영화인 줄 알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2016년 6월 언젠가, 서울에 올라간 김에, 어슬렁거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충무로의 한 극장을 찾았다. (나는 멀티플렉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웬만하면, 단독 극장을 찾곤 한다. 하지만 이런 극장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이구나, 하정우가 나오네, 김민희도 나오는구나. 이러면서 영화를 봤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편의점에 볼 일 있어서 금방 집에서 나온 행색이었던 나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통로 옆 좌석에 몸을 욱여넣고는 영화에 몰입했다. 그런데,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많이 야했다.


나는 <아가씨>가 퀴어(레즈비언) 영화인 줄은 몰랐다. 물론 그런 관계성은 영화의 일부분이었고, 꼭 그것 때문에 영화를 보거나 혹은 외면할 필요도 없지만. 생각보다 많이 직설적이었고, 굉장히 과감했다. (순전히 내 기준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당황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근데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줄은 몰랐네.


영화가 끝나고, 눈부신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잠시 주위를 보니, (이상하게도) 내 주변에는 젊은 여성 관객들만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분명히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영화에 몰입해 있는 순간, 한 두 명씩 들어왔나 보다. (몰랐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를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얼굴을, 그다음엔 내 반바지와 티셔츠와 슬리퍼를. 그리고는 재빨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무슨 일 있나?


혼자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베드신 장면이 떠올랐다. 아뿔싸. 나는 그 장면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민망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침도 삼켰는데. 아니야, 쩝쩝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맙소사.


어쩌면 나의 행동이 주위 사람들의 관람 환경을 많이 침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자기도 모르게 쩝쩝거리는 경우도 많으니까. 더구나 내 옆, 앞 뒤로 모두 관객들로 가득 찼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굉장히 민망했다. (물론 안 민망해도 됐지만!) 그래서 제일 늦게 나왔습니다. 크레딧도 모두 확인하고, 정돈하시는 여사님께 인사하면서 말이지요.


맞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숏버스>(2006) 시사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시사회 때나 무삭제로 볼 수 있는 문제작이라고 해서 신나게 달려갔었다. 상영관 안에 들어갔는데, 나만 빼고 (거의) 다 여성 관객이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1328060B49A4907325 나로서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영화는 노골적인 퀴어 성애 묘사로 가득했고, (진짜 당황스러웠다) 주변엔 여성으로 가득했고, 심지어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감독이 무대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감독이 오는 줄도 몰랐다) 옆에 있던 여성 관객분들이 일제히 손팻말과 플래카드를 들었고, 비명(과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나. 그건 팬미팅을 겸한 행사였던 것이다!! 심지어 존 카메론 미첼은 지난번 행사(이미 이런 행사를 했었나 보다) 때 약속을 했다며,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불렀는데, 그건 "엄마가 섬그늘에"로 시작하는 <섬집 아기>였다. 아, 으스스했다.


가끔 극장에 갔다가 나도 모르는 분위기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분들에게는 조금 미안할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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