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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Sep 02. 2022

기쁜 우리 젊은 날

저는 촌스러운 80년대가 좋습니다.

나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을 굉장히 나중에 봤다. 


내가 영화에 빠져 들 무렵,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는 극장에 없었다. 다만 그의 조감독 출신인 이명세 감독의 영화들이 극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이명세 월드에 빠져들었다.  그의 영화는 뭔가 유니크하다,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뿔싸. 뒤늦게 그 시작이 되는 영화를 봤다. 그게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감독 배창호, 조연출 이명세, 각본 배창호 이명세인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를 보고 있으면 배창호의 영화인지 이명세의 영화인지 헷갈린다. 물론 배창호 감독님의 영화겠지만, 이명세 월드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마치 숨기려 숨기려 해도 들국화와 전인권의 노래에서 비틀스의 냄새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거 맞는 비유인가?) 


어쨌거나 그런 느낌은 영화 속 여기저기에 묻어 있다.


선한 사람들의 희극 같은 상황에서 동화 같은 세트와 화면까지. 더욱이 김영민(안성기)이 주혜린(황신혜)에게 건네는 희곡의 제목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사실은 이명세의 두 번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를 떠올리게 만든다. (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박중훈이 맡았던 주인공 이름도 '영민'이다.)

그리고 창 밖에서 창 안을 바라보는 설정이라던가, 뜬금없는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 같은 건, 우리가 익히 보아온 이명세표 스타일이다. (하지만 배창호 영화에서 80년대에 이미 창대하였다. 아, 뒤늦게 옛날 영화를 보기 시작한 사람이 겪는 근본 없는 영화보기의 낭패이자, (반대로) 숨겨진 보물 찾기의 시작인 걸.) 


이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김현석 감독은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소개하면서, 1987년 당시에 이 영화가 그해 가장 재미있는 영화 1위와 가장 슬픈 영화 1위에 똑같이 뽑혔다고 했다. (영화 잡지 <스크린>(1987.12월호 참조)


순박함을 머금은 안성기, 당시 미의 절정이었던 황신혜, 감독님이 밝힌 것처럼 "희랍인 조르바"스타일의 연기를 구현한 최불암 배우님, 여기에 80년대의 촌스러움이 더해져 낭만적인 첫사랑 영화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판할 지점도 있다. (특히 여성성에 관한 것들!)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것이 많다. 착하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들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찾기 힘든 것들이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90년대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나 <첫사랑>(1993), <남자는 괴로워>(1995) 같은 영화로 바뀌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에 이런 영화를 봤다. 배창호를 보기엔 너무 어렸기에, 이명세 감성에 빠지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다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은 2000년대 이후로 뻗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프다. 아쉽다. (그러니까 <첫사랑>이 흥행했어야 했다. 김혜수 배우가 얼마나 예쁘게 나왔는데. 아니면 <남자는 괴로워>가 적어도 평타를 쳤던가. 나는 <남자는 괴로워>를 극장에서 본 극소수의 관객 중 한 명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딱 80년대 스타일이다. 나는 그게 좋다. 80년대 한국영화에는 뭔지 모를 순수함이 있었다, 고 생각한다. 시대가 그렇게 하 수상했는데도 말이다. 사실 80년대 멜로 영화, 청춘영화는 대부분 그렇다. 엉성하고, 시대를 반영하지 못했고, 촌스러웠다. (검열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좋았다. 아마도 그때는 내가 어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보는 영화는 다 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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