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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Sep 13. 2022

고다르

누벨바그 시대의 마지막 멋쟁이 아저씨, 안녕.

장 뤽 고다르가 별세했다. 1930년생. 감히 마지막 누벨바그 키드였다고 말하고 싶다. (52세에 소천한 트뤼포에 비하면, 장수하신 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정작 그의 영화를 많이 즐기지는 못했다. 많이 보지도 못했다. 


문득 지난 3월, 에무시네마에서 <비브르 사 비 Vivre sa vie>(1962)를  관람했을 때가 기억난다. 결국 그가 살아 있을 때, 내가 본 마지막 영화인 셈이네.



고다르는 일종의 숙제와 같은 감독이었다. 


나에게 고다르는, 포스터는 근사하지만 영화는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영화, 영화사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만 극장에서는 만족하기 힘든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예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고다르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너도나도 고다르의 신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관객 수는 매우 적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영화를 보진 않지만, 고다르는 꼭 언급해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영화인인 척하는 사람들의 허위를 꼬집은 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매혹적인 여배우의 클로즈업으로 가득한 <비브르 사 비>는 근사했다. 


3월의 쌀쌀한 토요일 밤, 경희궁 근처의 아늑한 골목과 가로등 불빛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어떤 영화는 한 장면만으로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솔직히 재미있지는 않았다. 중간에 졸기도 했다. 하지만 화면을 뚫고 나오는 프랑스 누벨바그 전성기의 고다르는 댄디했다.


사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은 형식적 완성도는 낮은 편이다. 


(모든 영화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마음은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가 가 있는데, 제작 방식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차용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빠져버린 젊은 비평가들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들은 누벨바그 시기라 불리는 60년 대 초반에만 반짝하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마치, 데이브 그롤이 nirvana 활동 시간의 몇 배 이상을 푸 파이터스로 활동하고 있듯, 고다르를 비롯한 누벨바그의 몇몇 감독들은 더 이상 누벨바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길을 걸어간 지 오래다.


한 분야에서 몇 년 정도 일하면 대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10년, 20년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점점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몇십 년을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별빛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고다르와 그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영화를 본 극장과 그 골목까지 모두. 함께 어우러져 매력을 뿜어낸다. 그런 요소들은 영화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때론 어떤 아우라가 다른 사물의 본질마저도 바꿔버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고다르가 만든 영화 중에서는 <모든 남자의 이름은 패트릭이다>(1959)라는 단편영화를 좋아한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9년은 고다르와 그의 친구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였다. 


트뤼포가 이제 막 <400번의 구타>(1959)로 데뷔했고, 저마다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무렵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에릭 로메르가 시나리오를 썼다. 그래서 고다르 영화라기보다는 로메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요. 전 에릭 로메르를 좋아합니다. 그의 영면일은 2010년 1월 11일. 그리고 고다르는 오늘, 친구들 곁으로 떠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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