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08. 2022

겁쟁이

홍상수 이전에 <겁쟁이>가 있었다

세계영화사에도 나오는 인도의 거장, 사트야지트 레이의 영화 <겁쟁이>(1965)는 아무리 봐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 2008)와 비슷하다.


로이는 열심히 설득하지만, 카루나의 마음은 이미 굳었다. 마치 바위처럼.

내용은 이렇다.


차가 고장 난 로이는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고, 하룻밤 머물기 위해 그의 집까지 따라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헤어진 애인 카루나를 만난다. 놀람도 잠시, 로이는 속물 같은 남편과 살고 있는 카루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함께 도망가지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옛날의 자기가 아니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애절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처음부터 로이는 이 여자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저 자동차가 고장 나 갈 곳이 없는 신세였으며, 친절한 (그러면서도 속물이며, 카스트 계급 찬성론자인) 카루나의 남편이 호의를 베풀어 그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어쩌다가 우연히 카루나와 재회했는데, 갑자기 사랑과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나 보다.

 

로이는 남편이 자는 동안, 카루나에게 쪽지를 남긴다. 기차역에서 기다릴 테니 자신을 여전히 사랑한다면 와달라고. 그리고 기차역에서 전전긍긍하는 로이. 멀리서 카루나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녀는 로이와 함께 떠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단지 로이가 몰래 가져간 물건을 회수하러 온 것뿐. 그렇게 여자가 떠나고 허망하게 쳐다보는 로이의 얼굴 위로 영화의 타이틀이 뜬다. 


“겁쟁이”


글자로 사람을 팰 수 있다면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로이를 보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구경남(김태우)이 떠올랐다. 구경남은 우연히 예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고순임(고현정)을 만난다. 고순임은 자신의 대선배이자 노화가인 양천수와 결혼한 상태. 그는 고순임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마치 <겁쟁이>의 로이처럼. 

두 남자가 하는 대사도 비슷했다. <겁쟁이>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와 남편은 닮은 게 하나도 없고, 그래서 너는 지금 불행할 거라고. (아마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겨우 하루 동안 봤으면서"라고 대꾸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고순임도 비슷하게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대사는 제목이 되었다.


고순임의 손을 잡고, 열심히 설득하는 구경남

아마도 조이와 카루나가 사귀던 과거에, 조이는 카루나를 실망시켰나 보다. (중간에 살짝 졸았다. 그래서 잘은 모르겠다) 이때 만들어진 감정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결심이 된다. 그건 아무리 두드려도 결코 열리지 않는 문과 같다. 게다가 로이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반성했다면, 오히려 카루나에게 행복을 빌어주고 떠났어야 했다. 카루나를 향한 구애는 그저 변덕이었을 뿐이다. 아니면 질투이거나.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좋아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 <겁쟁이>도 그럴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후련함도 있었고, 짜증도 났다. 어쩌면 로이에게서 여러 가지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기시감, 아니면 충분한 개연성 같은 것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여전히 구체적인 건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종종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치사하고 비겁했던 나를 발견한다. (그게 연애든 아니든) 누군들 용감하고 싶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누구나 용감할 수는 없다. 옛날 영웅 서사는 다 남의 것이리라. 


그래도 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언젠가의 기억이 불현듯 찾아와 한밤중에 이불을 차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여전히 성장하는 과정이라 믿고 싶지만, 성장이 얼마나 더딘지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도 내내 겁쟁이로 산다면, 그 속에서 얼마나 부끄러울까? "후회의 뼈들이 바위 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로 자꾸만 서성일 것"(장정일의 <지하인간>)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리고 오늘도 반성, 반성이다. (김영승의 "반성"을 떠올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시민 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