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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06. 2022

시민 케인

우리가 순수한 아이였을 때

<시민 케인>(1941)의 연출자 오손 웰즈는 스튜디오와 제작자가 군림하던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도 자기 고집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상업적으로) 연거푸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튜디오는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때론 심하게 간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때로는 자존심을 굽히기도 했던, ‘내추럴 본 영화감독’이었다. (<악의 손길>(1958) 복원판을 보면, 영화 시작 전에 오손 웰즈가 이 영화를 자기 의도대로 살려내기 위해, 제작자에게 어떤 식으로 노력했는지 설명이 나온다.) 


<시민 케인> 촬영 당시의 모습.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오손 웰즈다.

오손 웰즈는 원래 연극배우였다. 머큐리 극단을 결성하여, 실험적인 연극을 만들던 그는 1938년에 <화성침공>이라는 가상의 드라마를 만들어 CBS 방송국에서 공개했다. 그 드라마는 화성인들이 뉴저지를 침공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실제 사건으로 오해한 시민들이 피난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재능을 눈여겨본 RKO에 스카우트되어, 할리우드에 입성한다. 이렇게 만든 영화가 <시민 케인>이다. 그는 데뷔작으로 영화사 100년을 진동할 걸작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당시 나이가 26살이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보던 날이 기억난다. 어떤 동네의 비디오 가게 구석에 있던 <시민 케인>을 찾아내서,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아마 영화 개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민 케인>의 스틸 컷일 것이다. 책에서 보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지만.

온갖 영화 개론서에 너무나 많이 등장하여, 보지 않아도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영화 <시민 케인>은 막상 영화를 보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부분이 다 어디 있는지 아리송해진다. 지금 보기엔 너무 밋밋한 화면과 약간 오버하는 연기, 느리게 흘러가는 내러티브 때문에 졸음이 밀려온다.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천재의 영화이자, 위대한 영화 1위로 꼽았단 말인가? 졸다 일어나 이렇게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 케인> 실망이야.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낙원상가 시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민 케인>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극장에 들어가기 앞서 심호흡을 했던 것 같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마음속으로 ‘너무 지루해요’를 30번쯤 외쳤다. (결국은 졸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4:3의 흑백 화면이 펼쳐지는 순간까지도 겁이 나기만 했다. 이제 2시간의 고행길을 달려야 한다. 이번에도 또 졸면 어떡하지? 코나 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는 아주 슬펐다. (이론서에 나오는 <시민 케인>에 관한 분석은 잊자. 딥 포커스도 잊자) 스크린 속에는 괴팍하고 외로운 한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할 줄 몰랐던 남자. 그래서 그의 사랑과 관심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영화의 맨 처음 괴팍한 부자 케인이 ‘로즈버드’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호사가들은 그 '로즈버드'가 뭔지 찾아다닌다. (순전히 가십거리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케인이 죽으면서 말했다는 ‘로즈버드’가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다니는 기자의 시점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에 플래시백을 곁들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자는 케인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아무도 그 의미는 모른다. 다만 엽기적이고 즉흥적이며 제멋대로였던 나쁜 놈 케인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스포 있음)


그가 그토록 밉살스럽게 행동했던 이유는 사실 로즈버드와 관련이 있다. 케인이 어린 시절 부모 곁을 떠나 도시로 떠나기 전까지 늘 타고 놀던 썰매의 이름이 ‘로즈버드’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결정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케인은 이때 집에 남았어야 했다.

로즈버드를 타고 놀던 어린 시절,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했던 케인은 성인이 된 뒤, 어린 시절의 케인이 가졌던 눈빛, 표정, 인상을 깡그리 잃어버렸다. 대신 의심, 탐욕, 질투, 폭력만이 남았다. 

아마도 그의 결핍은 그때 시작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품을 떠나 냉혹한 자본가의 집으로 갔을 때부터. 그리하여 평생을 로즈버드로 대변되는 애정과 따스함을 찾아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결국 손에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몰랐으니 참으로 불쌍하고도 외로운 삶이었다. (그는 집에 남아, 엄마랑 살았어야 했다.)


살아있었을 때, 아무도 케인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결국 죽어서도 사람들은 로즈버드로 요약되는 케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케인의 집 지하창고에 있던 썰매 ‘로즈버드’는 어떤 의미도 없이 벽난로 속의 뜨거운 불길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고 아무도 케인의 마음을, 로즈버드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영영 끝나고 만다.  


케인은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썰매가 더 좋았나 보다.

쓸쓸한 영화였다. 불쌍한 케인이었다. 아니, 케인은 불쌍한 나쁜 놈이었다. 


그의 과거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살아생전 그의 행동이 용서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나쁜 놈에게도 천진한 시절이 있었구나, 어떤 지점에서부터 잘못되었구나, 하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 비단 케인뿐만 아니다. 누구에게든 어린 시절은 있었다. 해맑게 웃던, 젖먹이 시절이 있다. 그때는 모두가 착했는데 말이다. 귀엽게 웃으며, 옹알이를 했는데. 


어쩌다가 우리는 괴물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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