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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Oct 28. 2022

어카운턴트

루틴을 지키는 것, 깨진 루틴을 회복하는 법

<어카운턴트>의 주인공 크리스찬은 고기능 자폐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빠의 세심한 교육을 통해 근사한 무술 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핸디캡이자 장점을 잘 살려서, 회계사가 되었다. 어른이 된 크리스찬은 현재 심플하면서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나면 심심한 영화가 되겠지. 마치 좀비 영화의 주인공이 늘 안전한 곳을 떠나 어딘가로 이동하듯, 이 영화에서도 어느 날 사건이 생긴다. (이를 시나리오에서는 '발단'이라고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한밤중에 고양이 등을 긁어주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렸을 때였다. 그때 <어카운턴트>(개빈 오코너, 2016)가 시작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TV를 틀다가 이제 막 시작하는 영화를 보면, 몇 번을 봤더라도 끌리고 만다. 그래서 (잠을 포기하고는) 영화를 봤다. 괜찮은 영화였다. 벤 애플렉은 매력적이었고, 여배우도 근사했다.


그는 오와 열을 맞춰 정리 정돈하는 걸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는 강박에 가깝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완성도는 고만고만하다. 고기능 자폐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마치 배트맨처럼,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 벤 애플렉은 새로운 <배트맨>의 주인공이었다) 낮에는 회계사로 일하고 밤에는 가끔 킬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평범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생활 방식을 깨트리고 말았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면 큰일 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루틴이 깨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종류의 루틴을 만들어낸다. 습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혹은 일처리의 순서랄까. 극 중 크리스찬(벤 에플렉) 또한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자폐증을 가진 크리스찬에게 루틴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력한 결계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심지어, 다른 사람에 의해 깨진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엔 회복하는 루틴이 필요하다. 아니면 기분 좋아지는 방법. 혹은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 화를 삭이는 방법. 자신을 지키는 방법. 그런 방법과 순서를 익혀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덜 기분 나쁜 채로 살아야 하니까. 세상에는 무례한 사람도 많고, 건방진 사람도 많고, 단순히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더 많으니까. 


영화 속 크리스찬은 거의 고아인 상태로, 무방비 상태로 그런 걸 익히며, 머리가 터지지 않게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그렇다. 없다면 만들 필요가 있다. 기분 나쁘다고 술 마시는 거 말고. 나한테 알맞은 좋은 방법은 뭘까? 아마도 산다는 건 그런 걸 찾는 시간인 것 같다. 간신히 찾으면 또 그땐 죽겠지만.


박스오피스모조에 의하면 이 영화에는 44,000,000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 그리고 북미에서 86,260,045달러, 해외에서는 68,900,000달러를 벌었다. 그리하여 총 155,160,045달러의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나쁘지 않은 흥행이다. 이 영화는 명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르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관객이 기대한 것을 그대로 돌려준다. 무엇보다 액션의 타격감이 매우 좋았다. 결말도 깔끔했고. 아마도 옛날 비디오 시장 때라면 1위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참, 이 영화에서는 보온병이 중요한 의미로 등장한다. 같은 '보온병' 애호가로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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