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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Oct 17. 2022

옛날 극장을 보러 갔다

극장에 대한 이탈리아 영화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이탈리아에서는 극장에 관한 영화 2편이 만들어진다. 바로 <시네마 천국>과 <스플렌도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네마 천국>(주세페 토르나토레, 1988)이 극장을 밥 먹듯이 다니던 토토가 영화감독이 된 뒤 훗날 고향의 극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면, <스플렌도르>(에토레 스콜라, 1988)는 어릴 적 토토가 일했을 법한 극장에서 평생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둘 다 이탈리아 영화이고, 둘 다 고전 영화들이 화면에 나오며, 둘 다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둘 다 문을 닫고 만다.  하지만 <스플렌도르> 쪽이 더 서글펐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는 극장으로 돌아와 추억에 잠기면 그만이지만, <스플렌도르>의 직원들은 쇠락하는 극장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추억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스플렌도르(Splendor)는 '화려함', '영광'이라는 뜻이다

문득 내가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가, 결국 사라지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도들로 꽉 찼던 공간에 점차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스플렌도르> 속 극장처럼 몇몇 사람만 남았다. 그래서 새삼 '교회에 의자가 많았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든 잊기 어려운 영혼의 집이라는 게 있을 텐데, 나에겐 없어진 교회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크고 오래된 극장을 좋아했다. 


먼지와 냄새들, 낡은 흔적들, 빛바랜 포스터가 특히 좋았다. 큰 어두움에 나를 묻고 있으면 포근함이 나를 위로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있으면, 스스로 기념하기 위해 극장에 가기도 했다. 지금도 멀티플렉스보다는 대한극장이나 (사라진) 서울극장 같은 곳이 더 좋다. 옛날부터 그랬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허리우드와 중앙 극장, 국도 극장과 아세아 극장, 스카라 극장 같은 곳들. 그리고 가리봉동의 동시 상영관, 광명시 개봉 극장. 지금은 모두 사라진 "스플렌도르"들이다.


나는 그 극장들이 사라지고, 주차빌딩이 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당연히도 그들에겐 현실적인 문제가 잔뜩 있었을 것이다. 나야 <시네마 천국>의 토토처럼 가끔 추억하면 그만이지만, 오래된 극장들은 "스플렌도르"의 직원들처럼 관객을 기다리고 결국 상처받았을 테니. 


에드워드 렐프는 일반적인 공간(space)과 자신만의 장소(place)를 구별하면서, 장소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공간일까? 맞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이상의 무언가가, 이를 테면 우리의 감정이나 추억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꼭 극장이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그런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생각하면, 극장도 생각난다. 그때 있었던 일들도 함께 떠오르고. 


하지만 이제는 웹 속에 우리의 극장을 건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OTT를 통해 영화를 보고, 웹 속에 마음을 담아둔다. 댓글로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구들과 동시에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렇게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온라인 속의 극장이 탄생한 것이다. 극장처럼 망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네트워크가 붕괴되지 않는 한, 영화 관람의 추억인터넷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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