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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Feb 06. 2023

백 투 더 퓨처 1

영화를 보고 나서 스케이트보드를 샀습니다.

<백 투 더 퓨처 1>(로버트 저메키스, 1985)는 내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극장에서 본 영화다. 아마도 충무로 대한극장이었고, 여름방학식이 있던 날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백 투 더 퓨처 2>를 보다가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다. 영화도 영화지만, 앨런 실베스트리가 맡았던 멋진 영화 음악 때문일 것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음악은 영화보다 강하다) 잊고 있었던 그날의 흥분 같은 게 떠올랐다.


중딩 때는 저런 모험을 하는 마티가 부러웠다. 지금은 아니고.

첫 장면부터 대단하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뻔한 설정인데, 마티가 창고에서 기타 연습을 하기 위해 스피커와 앰프의 볼륨 같은 걸 올리는 장면이, 꼭 타임머신을 조작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니, 중딩이지) 그리고 스피커가 터지면서 마티가 뒤로 날아가는 장면에서는 포복절도를 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여러 일들을 해결하는 장면들. 내숭쟁이 엄마가 사실은 엄청 호기심이 많았다든지, 아빠는 겁쟁이였다든지 하는 설정의 반전들이 특히 재밌었다. (나는 마티의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걸기 전에 호기롭게 초코우유를 주문해서 한 모금 마시는 장면이 그렇게 웃겼다.)


마티의 아빠는 정말 안습이었다.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역순으로 돌리다 보니 생기는 유머도 좋았다. 배우 출신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한창 배우로 출연할 때라든지, 그때는 점원이었지만, 나중에 시장이 된 흑인과 만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랬다. 결국 '미래로의 귀환'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번개 맞은 시계탑 사건이야말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현재의 정보가 다시 과거에서 사용되는 경우일 것이다. (이것은 시나리오 작법에서 말하는 '씨 뿌리기와 거두기'인데, 보통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재치 있게 구성했다.)


마티가 연주하는 척 베리의 기타 솔로를 다시 척 베리가 듣는다는 설정은 정말 짜릿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백 투 더 퓨처 1>을 본 뒤, 두 가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 두 번째는 록밴드를 만드는 것.


그래서 엄마를 졸라 돈을 받아서, 동대문 시장에 갔다. 그때는 동대문 시장이 최고였다. 에어 조던(짝퉁)도 거기서 샀다. 한 친구는 맥가이버 칼을 사기도 했다. 우리가 열광했던 모든 물건이 동대문 시장에 있었다. 나는 5,000원을 주고 스케이트보드를 샀는데,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이걸 타고 학교에 가면, 모든 여자애들이 나를 우러러보겠지? (더구나 교복 자율화 시대였다. <백 투 더 퓨처>의 마티처럼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애들이 많았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학생만 3,000명이 넘었다) 그중 몇 명이 스케이트보드를 매고 오다가 (폼으로 들고 다닌 거다) 동네 건달 형들에게 걸려서 뺏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왜 아니겠는가? 그분들도 <백 투 더 퓨처>를 봤을 텐데.)

더구나 내가 산 스케이트보드는 모양만 얼추 비슷한 짝퉁이었던 게 분명했다. 발판이 너무 높게 떠 있어서 그 위에 올라서면, 관악산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동네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닐 만한 평평한 길도 없었다. 그래서 학교까지는커녕 동네 슈퍼도 가기 힘들었다. (결국 보드는 몇 년 동안 집구석에서 굴러다녔고, 나중에 엄마가 마당에서 일할 때 앉아서 편하게 이동하시는 걸 본 것 같다.)


록밴드도 흐지부지 끝났다. 당시는 한국 헤비메탈의 부흥기였다. 시나위와 백두산, 부활과 H2O 같은 4대 천왕이 있었고, 들국화도 여전히 유효했다. 블랙홀, 블랙 신드롬, 외인부대, 카리스마, 작은하늘 같은 밴드가 활동했고, 외국에서는 트래쉬 메틸밴드 메탈리카와 헬로윈, 크리스찬 밴드 스트라이퍼가 포효하고 있었다. 어떤 애들은 하얀 면티에 매직으로 해골을 그리고 다니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실은 내 얘기다!)


당시 나는 스트라이퍼를 좋아했다. 크리스찬 밴드니까, 이들의 음악을 들어도 지옥에 가진 않을 것 같았다.

모두가 밴드를 하고 싶어 했다. 서로 어떤 포지션을 맡을 것인가로 한 달은 싸웠고. (모두가 드럼이나 퍼스트 기타를 노렸다. 하지만 누구도 악기를 다룰 줄 몰랐다는 게 함정!) 밴드명을 가지고 그 이상을 고민했다. 간신히 포지션과 밴드명이 결정되었을 무렵, 우리의 눈과 귀를 훔쳐갈 또 다른 영화가 등장했고, 아이들은 곧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아 떠났다. 그러다가 학년도 바뀌고, 반도 바뀌었고. 


<백 투 더 퓨처>는 타임머신이 아니더라도, 전기기타와 스케이트 보드만으로 훌륭한 영화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영화였다. 나중에 영화를 좀 더 보게 되었을 때, 박사님 역을 맡았던 사람이 <아담스 패밀리>에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백 투 더 퓨쳐 2>에 등장했던 엘리자베스 슈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와 <세인트>(1997)에 출연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CSI> 시리즈에도 나온다) 그리고 <백 투 더 퓨쳐 3>에서 박사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가 <길버트 그레이프>(1993)의 그 부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마티, 마이클 J. 폭스가 지금은 많이 아프다는 것도. 

 

<백 투 더 퓨처>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원을 받은 이른바 스필버그 사단이지만, 나는 스필버그보다 저메키스가 더 좋다. 아마도 그의 영화를 동시대에 관람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 투 더 퓨처>는 물론이고, <죽어야 사는 여자>(1991), <포레스트 검프>(1994), <콘택트>(1997), <왓 라이즈 비니스>(2000), <캐스트 어웨이>(2001) 같은 영화를 극장이나 비디오로 보면서 자랐다. 그의 영화를 자양분 삼아 쑥쑥, 성장한 것이다. (정말로 성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의 음향 선생님은 <왓 라이즈 비니스>가 최고의 사운드 영화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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