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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May 25. 2023

시드와 낸시

찰나의 폭발, 영원한 사랑

지금보다 어릴 때는, 왜인지,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 피곤했다. 속상한 일도 많았나 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모두 하찮게 보이긴 합니다만.) 


머리를 땅속에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날이 계속되면, 헤드폰을 목에 걸고 펑크를 들으며 뛰어다녔다. 때때로, 한강을 건너거나 빌딩의 옥상에 서기도 했다. 아니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코너나 핫트랙의 말랑한 음악들 사이로 까닭 없는 분노를 질겅거리며 씹든지. (왜 이런 걸 읽는 거야!) 


조용히 눈을 깔고, 땅만 바라보며 걸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마시면서, (자기 딴엔) 한없이 우울하게, 혹은 과장된 머릿속을 백지처럼 하얗게 불태워 버린 채로, 음악을 들었다. (아마도 중딩 시절이었을 것이다. 후후.)


<시드와 낸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리포맨>(1984)의 알렉스 콕스가 만든 두 번째 영화 (1986)다. 록음악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밴드라 불린,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와 그의 애인 낸시 스펀젤의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하고 기괴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영화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기겁할 만한 사랑을 꿈꿨다.

섹스 피스톨즈는 1977년에 단 한 장의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을 내고 사라졌지만, "이것이 펑크다!"라는 정의를 온몸으로 보여준 안티 히어로 슈퍼밴드라고 할 만하다. (지속가능한 다다이즘이 있을 수 없듯, 당시의 펑크가 프랜차이즈처럼 롱런하는 것도 웃기긴 할 듯하다.)


이 밴드가 보여준 음악들이 사회적 박탈감의 표현이니 기성세대의 저항이니 하는 것은 집어치우자. 이들은 다만 젊은 시절의 ‘찰나의 폭발’을 담고 있다. 응축된 폭발, 앞뒤 안 가리고 내지르는 광기, 그리고,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의 마음.


시드를 연기한 게리 올드맨. 배우의 탄생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시드와 낸시>는 이런 섹스 피스톨즈와 펑크와 젊음의 찰나, 사랑의 굉음을 제대로 잡아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기에, 오히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끝맺은 사랑을 세상에서 이어가길. 그저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던 것이리라.


이 영화는 시드와 낸시의 만남과 사랑과 이별을 두서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일관된 이야기가 진행된다기보다는 그들의 울퉁불퉁한 정서를, 허겁지겁 좇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허리춤을 풀고, 양말을 벗고, 방금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낫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놀라울 만큼 잔잔하고 깊은 연못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드 비셔스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my way)를 부르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그 씬은 이 영화를,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를 응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대체 프랑크 시나트라와 마이웨이와 턱시도와 장미와 권총과 시드 비셔스. 이 얼마나 놀라운 조합인가?


시드 비셔스 역의 게리 올드맨은 데뷔작인 이 영화를 통해 멋진 연기를 공식 선보이게 되는데, 특히 가죽옷을 입은 늘씬한 그의 다리는 섹시하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게다가 커트니 러브가 낸시의 친구역으로 출연하는 장면도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커트니 러브와 커트 코베인의 사랑이 <시드와 낸시>와도 닮아 있다고 할 수 있겠구나. 흠.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런 사랑을 꿈꿨다. 저들처럼 폭발하는 사랑에 몸을 맡기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발했을까? 파편은 어디로 튀었을까? 나만 폭발에서 살아남은 건가? 아니면 관계의 불발탄이 된 걸까.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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