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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고실험 Mar 29. 2022

예술의 해석성

순간은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예술들이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아름다움들. 정결함의 아름다움, 웅장함의 아름다움, 복잡함의 아름다움 등. 그리고 예술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림은 점, 선, 면과 색채로 이야기한다. 음악은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과 음의 하모니로 이야기한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그리고 문자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상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종합예술이다.

그중에서 의미 전달이 가장 용이하면서 동시에 가장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영상이다. 이미 그들은 우리의 눈과 귀를 장악하고,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강제로 밀어 넣고 있다. 완성된 하나의 영상은 인간의 오감을 지배하며 감상하는 자의 상상력을 극도로 제한한다. 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손쉬운 예술이다. 내 책임은 없다. 그 영상을 만든 사람이 잘 만들면 나도 좋은걸 감상할 수 있는 거고, 그 사람이 잘못 만들면 나는 나쁜 걸 감상하게 된다.

 그다음은 문학이다. 문학은 단어 뒤에 인간의 오감을 흩뿌려놓고, 어간 사이에 시간을 담았다. 문학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독자들에게 희뿌연 세상의 한 골목으로 안내한다. 그 흐릿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학인들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흐릿함을 걷어내고 선명하게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서 조금은 내 의지를 담아 세상을 재구성하며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음악은 다소 난해한 면이 있다. 영상이나 문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1대 1로 매칭 할 수 있는 여지들로 가득 차 있다. 조금의 상상력만을 동원한다면 그들은 이 세상 속에 살아 숨 쉬는 것들이 된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이 없는 그 어떤 세상으로 가도 우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쟁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오히려 영상이나 문학이 전달하는 직접적인 메시지보다 조금 더 본질적이다. 음악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는 매칭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인해서 음악가의 마음을 왜곡 없이 그대로 담을 수가 있다. 또한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이 새롭게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음악은 어떤 감정이나 이야기도 단 하나로 정의 내리려 하지 않는다.(*1)

 그림은 무척이나 어렵다. 우선 그림에는 시간이 없다. 다른 예술들은 감상하는 자들이 예술가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올 시간을 충분히 주고 또 너무 급하거나 혹은 너무 느리지 않게 템포를 조절해준다. 하지만 그림에는 그런 게 없다. 한 폭의 그림 안에 모든 것을 담는다. 때론 무척이나 거만하다. ‘내가 이만큼 담았으니 어디 한 번 따라올 테면 따라와바.’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볼 때면 무척이나 지치곤 한다.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그것이 점인지, 선인지, 면인지, 혹은 색채인지, 나무인지, 호수인지, 하늘인지, 별인지, 사람인지, 아니면 그것이 보이는 그 모든 것 뒤에 숨어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찬찬히 뜯어본다. 어느 시점에는 작가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그들은 최종적인 판단을 보류한 채 우리에게 짐을 떠넘긴다. ‘예술에는 해석하는 자의 입장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나를 더욱 괴롭게 한다.(*2)

 무엇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건축공학자가 ‘건축의 아름다움이 가장 좋다.’라고 이야기한다고 음악가가 그를 보며 틀렸다고 이야기해선 안된다. 마치 우리에겐 한국어로 쓰인 문학이 가장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예술이라는 분야에서도 각자의 인간들에게 가장 많은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 장르가 있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예술들은 일종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과 결과라는 점이다.

*1) 가사가 있는 노래라는 장르는 완전히 다른 장르로 간주한다.

*2) 마찬가지로 시간적 흐름이 있는 만화 같은 그림은 다른 장르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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