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나는 내 삶을 개척해왔고 문제점들을 정복해왔다.
내 능력의 부족은 노력과 훈련으로 극복해왔고 환경적인 한계는 개선된 능력으로 극복하거나 때론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진입함으로써 해결해왔다.
내 입장에서 결정되어진 삶, 운명이라는 것은 그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삶에 마침점을 찍어야만 결정되어지는 일종의 실시간 롤플레잉 게임정도로만 생각되어졌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다 알게 된다.
내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다 만들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나마 핑계라도 댈만한 상황은 있긴 하다.
내 능력의 부족, 사회 규범적 한계, 과학적 한계 등 여러가지 한계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런데 핑계가 되지 않는데 극복도 하기 힘든 이상한 경우들이 있다.
이는 가치관이라거나 취향이라거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나의 선택'에 의한 결과들이다.
나의 선택은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현미밥을 먹기 싫어서 쌀밥을 먹을수도 있는 것이고 야구를 하기 싫어서 축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선택들은 비난받을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때론 중대하게 우리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누군가는 야구를 하는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하다가 평생 어깨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또 누군가는 고지방 음식을 좋아해서 성인병에 시달릴수도 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비싼 스포츠카를 구매한 후 투잡을 뛰며 라면만 먹는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오묘한 상황이다.
그 사람들은 아프고 힘들고 배고픈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일까?
아니면 자신의 삶을 괴로운 방향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일까?
우리의 삶이 소설처럼 쓰여져있는 각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만약 시간을 되돌려 내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으로 나를 옮겨둔다면 아마도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같은 선택을 하며 또 살아갈 것이다.
선택의 방향성, 비슷한 선택들의 연속.
만약 운명이라는 녀석이 있다면 아마도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기울게하는 녀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