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참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단순하게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인식하고, 판단하고, 생활함에 있어서 조화가 되지 않는 복잡한 현상들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도전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이삼십 대에 수십억의 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이 여럿을 키우는데도 아직도 대한민국 평균월급에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법 없이도 사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쪼개서 더 힘든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법을 비웃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나랑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벌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SNS에는 내가 하나도 갖지 못한 명품 사진들이 즐비하고 신혼여행으로나 갈 수 있을지 모를 해외여행 사진이 해마다 몇 건씩은 올라온다.
무엇이 잘못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닌가?
아니면 내가 뭘 대단하게 잘 못 살고 있는 것일까?
우선 전제로 이야기 언급되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대단히 불공평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공평하고 정의로웠다면 우리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뭐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이 커질 수 있겠지만 적어도 권력이나 부가 극히 소수에게 밀집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만족을 해소하는 양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카페가 없는 곳에 카페를 차려야 장사가 잘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잘되는 카페들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경쟁하듯 손님들을 끌어모은다. 반대로 말해보면 한가한 곳에 혼자 있는 작은 카페는 장사가 더더욱 안된다.
인간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배웠지만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 하려고 하고 그들과 비슷해지려 한다.
아니,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애당초 세상을 향한 불만이 이 정도로 쌓이진 않았을 것이다.
제일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정말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할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건가? 하루 종일 놀기만 하면서도 자동으로 돈이 따박따박 모여서 명품들로 몸을 도배하고 다니는 것들과 나는 대체 뭐가 다른 것인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죄라도 지은 것인가?’
뭐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불만은 많은 사람들이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과 기록이라는 행위에서부터 유도되는 오류이다.
가만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생각을 해 보자.
어렸을 적에 다친 경험도 있을 수 있고 무언가 도전에 성공한 경험도 있을 수 있다. 두근거리는 인연의 기억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까지도 인정하지 못하는 이별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것들보다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그냥 그렇게 지냈던 수많은 날들을 모두 망각해 버렸고 또 그것들을 기록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 각인이 될만한 일들을 기억한다. 또 기록한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망각한다.
물론 각인이 될만한 것들에 대한 기억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져 간다.
망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절망적인 축복이다.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명품으로 둘둘 두르고 다니는 그들은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인간들이다.
다만 우린 그것을 잘 기억하게 되어 있다.
한 가지 더 불행한 것은 우리가 그런 것들을 더 흥미로워하고 더 찾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억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로 도배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버리고 만다.
“왜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실은 이것이다.
우린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다.
돈이 아주 많은 소수의 모습을 본다고 내 모습을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사례를 발견했다고 보기 어렵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돌아보는 방법을 알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면 어떨까?
자연이 우리에게 알려준 가장 큰 가르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