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엔 살지 않지만, 대전을 좋아합니다.

관찰일지

by 리지사비


<귀여운 환대>

...

"서울에서 오셨어요?"

“아니... 노잼 도시인데 왜 오셨어요?"


대전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들이 항상 인사처럼 건네시는 말이다.

정말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 대전 너무 재미있고 좋은데요..!!!ㅎㅎㅎ”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

몇년 전

친한 동생이 쉬고 싶다며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며 붙잡았지만 생각보다 굳은 결심처럼 보여져 그녀의 앞날을 응원하며 보내줬었다.


그리고 몇년 뒤 써프라이즈 소식을 전했다.

“언니! 나 평생 함께할 사람이 생겼어! ㅎㅎㅎㅎ”


오!
축하해주러 직접 내려가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친구와 함께 바로 대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승강장에서 반겨주는

동생을 맞이했다


그녀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대전의 땅을 밟았다.

93년 대전 엑스포 이후 처음이었다.


연고도 없고, 친척도 없는 도시.

그저 지도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따뜻하고 귀여운 환대 덕분일까.

그날의 대전은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구름 한 점 없아 청아하게 맑았던 파란 하늘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노란 코스모스

그리고 무엇보다 —

여유로웠던 도시의 속도


매일 사무실에 갇혀 있다가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후우—” 하고 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마음이 갑자기 편안해졌다.


특별한 뭔가가 있었던 건 아니였지만

그때부턴가 대전이 슬쩍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날의 노란 대전


<어느새 계속 발길이 닿는 도시>


그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전을 방문하고 있다.


대전댁이 된 동생 덕분에

대전에 꽤 많은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와인 축제로,

0시 페스티벌로,

러닝 하러,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가려고 했다.


지난주에도
아버지 생신과 친구 어머니 생신이 같은 날이라서
생신 케이크를 사러 간다는 명분으로 대전을 다녀왔다



이참에 왜이렇게 대전에 빠진 것인지

관찰일지로 남겨보고 싶어졌다.



<반해버린 빵집>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 성심당.

사실 성심당을 알게 된 건 불과 3-4년도 안 됐다.

예전에 친구가 유명하다며 튀김 소보루 하나를 건네줬었는데 이름에 ‘성심’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어서
혹시 가톨릭 교구에서 만든 빵집인가 싶어 찾아봤다.


그리고 알게 된 이야기.

성심당 창업주가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을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대전에서 기차가 고장 나서 멈추게 되었는데, 그 앞에 성당이 있어서 그곳에 정착하고 빵집을 열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본점은 실제로 대흥동 성당 앞에 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괜히 친근감이 들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서소문 성지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 공간이 너무 좋아 근처로 이사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하나.

성심당은 남은 빵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를 위해 새 빵을 굽는다고 한다.

남은 게 아닌, 가장 좋은 상태의 빵을 내놓는 것.


성심당만의 철학에 마음이 훅 갔다.



<꿈돌이랑 꿈순이가 부부인 거 나만 몰랐어?>


어릴 때 엑스포에서 봤던 꿈돌이.

기억 한편에 넣어둔 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꿈돌이는 대가족이 되어 있었다.

꿈돌이와 꿈순이가 부부라는 사실도 충격인데
무려 다섯 형제의 부모라니..!


침묵 속에 잊혀 있는 동안 금실 좋은 꿈돌이 꿈순이 부부는 다둥이 가족이 되어 있었다.


꿈씨네 패밀리라 불리는

이 대가족은 대전 곳곳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꽃 모양 조형물로,
택시 위의 우주선으로,
귀여운 키링으로,
케이크와 빵으로,
심지어 라면으로까지.


예쁜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귀여운 꿈돌이가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매우 위험한 도시다.



<노잼이라 하면서 제일 재미있는 곳>


“재미없는 도시인데 왜 오셨어요?”

이제는 택시 기사님의 인사말조차

대전만의 유머로 느껴진다.


그리고 도시 홍보관 문구도 심상치 않다.

“꿀잼도시 대전”


대전 도시의 슬로건은

대전이쥬~

“DAEJEON IS YOU“


대전의 따릉이 같은 자전거 서비스는

“타슈~”


이상하리 만큼 재미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흥미롬고, 정이 간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간간이 보이는

초보운전 스티커마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유머 감각을 숨기고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는 것 같다.




<결론은 하나>


관찰 일지를 써보면서

대전이 좋은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사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


어떤 도시를 이렇게까지 좋아해 본 건 처음이다.

그래서 이 감정이 신기하다

앞으로 더 좋아해 보려고 한다.


#대전은사랑이쥬

#대전연고지아님


매거진의 이전글일일(一日)관찰일지 (2)파괴자의 질문, 평범한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