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Goa의 Arambol 해변
길을 찾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방랑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랑의 기쁨과 낯선 공간은 그대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서서히 그대는 모든 목적지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오쇼 라즈니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Meera의 Master Painter 클래스가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어느 날, 저는 오쇼의 저녁 강의 시간인 OWRB(Osho White Robe Brotherhood)에 참석했다가 중간에 뛰쳐나왔습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어요. 오쇼는 강의 내내 미국 정부가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고 말하며 자신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음모론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도리가 없으니 그저 궤변처럼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그건 제가 추구했던 영적인 깨달음이나 내면의 성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런 강의를 계속 듣고 있는 아쉬람의 산야신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명상이라는 약에 취해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같았죠.
클래스 마지막 날, 다 같이 오쇼 크리슈나 하우스 청소를 했어요. 그날 저녁, Meera는 자신의 아파트에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40평은 되어 보이는 널찍하고 전망 좋은 아파트였어요. 흰색으로 정갈하게 칠해진 벽에는 그녀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가구는 많지 않았지만 고급스러웠죠.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들어준 파스타로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Meera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Don’t throw away this painting. Your inner child wants to grow.”
제가 그린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당부였죠. 또 한편,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로도 들렸습니다. 그 말이 쉽게 잊히지 않더군요.
클래스가 끝나자 더 이상 아쉬람에 머물 이유가 없었어요.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오쇼도 아쉬람을 ‘어머니의 자궁’으로 비유하며,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아쉬람을 떠나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곳에 계속 머무는 건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어요.
남아 있던 인도 비자 기한은 한 달 반.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쉬람에서 만났던 미국, 유럽 출신 여성들이 떠올랐습니다.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자기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던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들과 달리, 저는 한국에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은 남자 친구와 단 둘이, 또는 혼자 인도 배낭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저도 이왕 인도까지 왔으니, 남은 기간 동안 여행을 하고 돌아가자 결심했어요.
제가 혼자 인도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자, 부모님을 포함해서 주변 한국인들이 모두 놀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화를 내셨죠. 하지만, 저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온실 속 화초 같이 인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보니,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정보는 한국에서 사 온 여행 가이드 책이 전부였습니다. 스마트폰은 당연히 없었고, 인터넷은 인터넷 카페에 가야만 쓸 수 있던 시절이었죠. 책을 보고 대강의 여행 계획을 짠 뒤, 대부분의 짐을 아는 분 집에 맡겨 놓고 배낭 하나를 맨 채 길을 떠났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푸네 Pune 남쪽에 위치한 고아 Goa의 아람볼 Arambol이었습니다. 오쇼 아쉬람에 명상을 하러 온 젊은이들이 많이 놀러 가는 유명한 해변 휴양지였죠.
야간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고아의 아람볼에 도착하니, 그곳엔 자유와 여유가 가득했어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해변은 한산했고, 바다에는 수영이나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서양인 관광객들이었고, 인도인들은 잡화를 파는 노점상에서나 드물게 보일 뿐이었죠. 해변 한쪽 구석에는 영화 ‘칵테일’에서 봤던 것처럼 간이 천막을 쳐 놓고 밤새 술 마시며 노는 클럽들이 있었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저는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자리 잡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사실 말이 게스트하우스지 간이침대와 작은 화장실, 샤워기가 딸린 작은 오두막이었죠. 시설은 허름했지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의자에 앉아 수평선 위로 붉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시간이 꽤 운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행지라서 그런지 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말을 거는 남자들이 많았어요.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데 네덜란드에서 온 남자가 합석을 제안하더니 밥을 사더군요. 근처 계곡에 산책을 가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에는 벨기에에서 온 니콜라라는 금발 머리 남자가 말을 걸어왔죠.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피터는 티베트에서 스승을 모시고 명상을 했던 경험을 얘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편안히 대화를 나누며 저는 조금씩 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사흘 정도 머문 뒤, 저는 고아 Goa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인도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엘로라 Ellora와 아잔타 Ajanta 석굴이었어요. 이 두 석굴은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라는 도시 근처에 자리하고 있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아우랑가바드를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아우랑가바드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고, 숙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방법은 오토바이 택시 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좀 꺼림칙했지만, 고아의 긴 해변을 오토바이로 달리는 기분은 의외로 꽤 짜릿했습니다. 순간 제가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더군요.
아우랑가바드까지 가는 야간 침대 버스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고역이었습니다. 버스가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덜컹거릴 때마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탄 것처럼 몸이 날아다녔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돌이켜보면 참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용감한 결정이었습니다. 젊은 여자 혼자 인도 배낭여행이라니 말이죠.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저를 지켜줄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젊어서였을까요? 그 당시 제 마음에는 두려움보다는 새롭고 낯선 경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세상 어떤 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