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체가 그대를 돕고 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여행 - 아잔타, 엘로라 석굴

by 이세아

그대의 존재가 존재계 전체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므로 그대는 불안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주 전체가 그대를 돕고 있다. 그러나 그 도움은 의도함이 없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계산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그대는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휴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주의 힘이 그대를 통해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 오쇼 라즈니쉬, 『장자, 도를 말하다』




인도에 도착해 넉 달 동안 머물렀던 푸네와 고아에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서구에서 온 백인이거나, 일본인, 한국인이었습니다. 특히 오쇼 아쉬람이 자리한 푸네의 동네는 인도 상류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어쩌다 마주치는 인도인들도 영어를 잘했고 친절했죠.


그러나 아우랑가바드는 달랐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진짜 인도 여행’의 시작이었어요. 지금까지가 순한 맛 인도였다면, 매운맛 인도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야간 침대 버스를 타고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하니, 새벽 네 시 반이었습니다. 해뜨기 전이었고 주변은 어둠이 가득했어요. 버스에서 내리자 릭샤왈라들이 몰려들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거지 아이들은 앞다퉈 손을 내밀며 저를 둘러쌌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더군요.


서둘러 릭샤를 잡아타고 가까운 호텔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걸어가도 될 거리였어요. 호텔 체크인을 한 뒤,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벨이 요란하게 울려서 깼더니 종업원이 룸서비스라면서 아침 식사를 주더군요. 숙박비에 포함된 건 줄 알았죠. 근데, 다 먹고 나니 계산서를 내미는 거예요.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인도 장사꾼들에게 속절없이 당한 것 같아 억울하고 황당했습니다.


기운을 차린 후, 저는 인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관광 안내소를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그곳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은 영어를 잘했고 굉장히 친절했어요. 그분들은 저에게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로 가는 관광버스 프로그램을 안내해 주었고, 이후 다른 여행지로 가는 기차 예약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훨씬 놓였어요.


하지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바나나를 꺼냈는데, 갑자기 소 한 마리가 저에게 돌진하더니 바나나가 담긴 비닐봉지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거예요. 잠깐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바나나를 포기했습니다. 소는 제 앞에서 비닐봉지와 바나나를 동시에 우걱우걱 씹어 삼켰어요.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닌 일이었는데, 그때는 혼자 낯선 땅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호텔방에 들어서니, 눈물이 터져 나오더군요. 세상이 온통 저를 해치려 덤비는 듯했고, 앞으로 여행 내내 홀로 그 공격을 감당해야 할 것 같았어요. 고아에서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서러움이 폭발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푸네로 다시 돌아갈까?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한참을 울던 저는 정신을 차리고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떠나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다. 여행을 시작할 때 목표했던 대로 인도 건축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는데 집중하자.’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예약해 둔 관광버스를 타고 아잔타 석굴로 향했습니다. 인도인 관광객들 틈에 섞여 산길을 오르자, 거대한 절벽에 반원형으로 늘어선 석굴들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기원전 2세기경부터 6세기에 걸쳐 조성된 불교 유적지로 한때 승려들이 수행하며 살았던 공간이었다고 하더군요.


석굴 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불상과 부조, 부처님의 생애를 담은 그림이 가득했습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색은 바래 있었지만, 자연 속에 건축과 조각, 그림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작품이었어요.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의 틀 안에 화가와 조각가들이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서 서로를 더 빛나게 만든 곳이었죠. 그걸 보며 저는 위대한 건축이란 단 한 사람의 솜씨만이 아닌, 다양한 재능이 한 공간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 어우러질 때 탄생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석굴을 구경하고 있던 중,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인도 여성이 다가와 제 옆에 서는 거예요. 깜짝 놀라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서 우리의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마치 기념사진처럼 말이죠. 당황스러웠지만, 밝게 웃고 있는 그들의 유쾌한 모습에 저도 마지못해 따라주었습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잔뜩 날이 서 있던 제 마음이 조금 풀어졌어요.




이튿날, 관광버스가 엘로라 석굴로 향했습니다. 엘로라 석굴은 아잔타 석굴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압도적이었어요. 절벽을 따라 2km 넘게 늘어선 34개의 석굴에 시간 순서대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나란히 공존하는 독특한 장소였죠.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그중 불교의 12번 동굴 앞에 섰을 때, 제 가슴이 세차게 뛰었습니다. 3층 구조의 웅장한 공간 속에 그 당시 불교도들이 추구했던 깨달음을 향한 열정과 사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듯했어요. 저는 그곳을 거닐며 영혼이 한껏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동굴들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16번 카일라사 사원의 장대한 규모와 화려한 조각은 마치 불교에 대한 반작용인 듯 과도한 요란스러움이 느껴졌죠.


그 광경을 본 뒤, 제 눈앞에는 불교의 흥망성쇠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아잔타에서의 실험과 탐구가 엘로라로 이어져 한 차례 중흥을 꾀했지만, 결국 일반 대중을 장악한 힌두교의 세력에 밀려난 것이었겠죠. 물론 당시 불교의 쇠퇴에는 정치·사회적 상황과 외세의 침입 등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날 저는 과거 불교의 엘리트들이 대중과의 연결 고리를 잃었기 때문에 쇠락해 버린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쇼 아쉬람에 모여 있던 산야신들처럼 말이죠.


저만의 생각에 심취해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인도인 남성이 저에게 가방이 열려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아마 물병을 꺼낸 뒤에 닫는 걸 잊었던 것 같아요. 그는 엄중한 표정으로 짧게 경고하듯 말했어요.


“This is India.”


조심하라는 말이었겠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듣자 인도에서 마주한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여행 초기 대책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저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할 때면 한껏 움츠려 들었고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주의 손길은 다양한 얼굴로 다가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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