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의 기억

by 구경하

"너, 서울 애가 아니구나.”


방송뉴스에 투입되기 전, 내가 기사를 읽은 연습 테이프를 듣고 선배가 말했다. 서울 애라고 한 적도 없는데요, 반발심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신입 기자들의 오디오 교육을 진행한 아나운서실에선 좀 더 구체적인 피드백을 줬다. “시옷(ㅅ) 발음을 /s/가 아니라 /ʃ/로 내고 있어요.” 알고 있다. 5살 때부터 어머니가 고치고 싶어 했으니까.


나는 부산에서 나서 5살 무렵, 만 나이로는 3살에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양으로 이사했다. 서울 태생인 언니는 금방 사투리를 고쳤지만, 나는 유독 시옷 발음이 샜다. 부산에서 겪은 시집살이를 연상시키기라도 했던 걸까, 서울 사람인 어머니는 그걸 못 견뎌했다. 함께 과일 가게 앞을 지나다 말고 멈춰 서서 내게 ‘수박’, ‘박수’, ‘세 살’ 같은 발음을 따라 하게 했다. 길바닥에서 발음 연습을 하는 동안 여름 볕은 점점 뜨거워졌고 어머니는 교정되지 않는 내 발음에 달아올랐으며 언니는 이 모든 상황을 한심하게 지켜보곤 했다.


조바심을 내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내가 자라면 사투리가 점차 사라질 거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내게 남은 부산의 흔적은 서서히 지워졌다. 하필이면 방송사에 들어가 발음을 지적받기 전까지는. 내 발성 기관은 말소리를 처음 배운 그곳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는 내 말투 어느 지역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만, 녹음하려고 기사를 힘주어 읽으면 첫소리 시옷 발음은 내 출생지를 드러냈다. 혼자 있는 오디오부스에서도 진땀이 났고, 뉴스 시간에 임박해 고쳐 녹음할 시간이 부족하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부산 출생이라는 걸 일부러 숨긴 적은 없지만, 내게 그곳은 어린 시절 잠시 머물던 곳일 뿐이다. 기억이 없는 그곳이 몸에 각인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당혹스럽다. 나는 리포트 기사를 쓸 때면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가능하면 다른 어휘로 바꾼다, 지금도.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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