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by 구경하

인간이 회상할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은 대략 만 3살 무렵 형성된다고 한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산에서 경기도 안양으로 올라오는 기차 안팎의 이미지다. 쏟아지듯 다가왔다 밀려나는 풍경들, 질주하다 멈출 때마다 펼쳐진 낯선 도시들, 기차가 정차한 역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부려 놓으면 차가운 공기를 품은 이들이 수선스럽게 다시 기차 안을 채웠다.


그 이전, 그러니까 부산 시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살았던 연립주택 옥상에서 놀던 기억 한 조각이 있지만, 사진을 보고 나중에 연상한 것인지 진짜 회상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고향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다. 기억이 없는 출생지를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즉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세 살 터울인 언니에게 고향을 물어보니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안양이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는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안양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행정에서는 졸업한 고등학교 소재지를 출신지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기준에도 안양을 고향이라 하기가 조금 어색하다. 나 역시 중학교 졸업까지 12년을 안양에서 살았지만, 고등학교는 부천에서 다녔기 때문이다. 흔히 쓰는 이력서 양식에는 내가 안양에서 보낸 시간을 기록할 칸이 없다.


더욱이 안양은 내게 과격하게 단절된 장소다. 중학생 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 옆에 있던 광활한 논밭이 평촌 신도시로 조성됐다. 아버지는 거기에 청약을 넣었는데 결국 떨어졌다. 그다음엔 미분양이라는 이유로, 아무 연고도 없는 부천 중동 신도시에 새 아파트를 신청하게 됐다.


이제 그 무렵 아버지 나이가 된 나는 그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도시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열망이었을까, 아니면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신도시 새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은 바람이었을까. 대학 등록금으로 줄줄이 목돈이 들어가기 전, 크고 좋은 집을 마련해 두려던 계획이었을까. 어쨌든 우리 가족은 자매의 중·고등학교 졸업에 맞춰 부천으로 이사했다.


문제는 이삿짐을 옮기는 도중에 내 가방이 분실되면서 발생했다. 핑크색 엘레쎄 가방에는 헤어지며 친구들이 건네준 손편지와 답장을 쓰기 위해 내가 친구들의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적어 둔 다이어리가 들어있었다. 또, 일기와 상장, 성적표 같은 내 유년 시절 기록들도 한데 담겨 있었다.


당시는 휴대전화나 소셜 미디어는커녕 이메일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진학한 고등학교에는 같은 중학교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은 서울로 향하는 길은 있어도, 도시 간 대중교통은 좋지 않았다. 잃어버린 가방은 나와 안양을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친구들을 수소문할 방법이 없자 나는 성장기에 경험한 인연과 장소들을 일찌감치 체념해 버렸다. 시간을 들여 맺은 관계 속에서 반복 재생하지 않는 기억은 힘이 없다. 이-푸 투안은 "사람들과의 유대가 없으면 그 장소는 순식간에 의미를 잃는다."*라고 말한다. 친밀하고 애틋한 장소들도 연결고리를 잃으면 과거가 될 뿐이다.


고향을 향해 민족이 대이동 하는 추석 연휴가 다가오지만, 나는 고향에 가지 않는다. 태어난 곳이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든, 고등학교를 졸업한 곳이든 그 어디도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마음의 장소는 아니다. 살던 곳을 처음 떠날 때 아쉬워하지 않은 것처럼, 뿌리내리지 않는 삶을 그저 현실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푸 투안.『공간과 장소』. 윤영호·김미선 옮김. 사이, 2020.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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