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

디아스포라의 귀향

by 구경하

금지된 귀향


재일조선인에 대해 처음 취재한 건 법원을 담당하던 시절이었다. 원고가 법정에 출석하지 못한 채 진행 중인 재판이 눈에 띄었다. 조선적 3세인 역사 연구자가 학술 행사 참여를 위해 한국 입국을 허가해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입국이 거부됐기에,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재판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공정한 재판이라 할 수 없었다. 텅 빈 원고석에서 그 자리에 나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재판은 현대사가 만든 비극의 한 장면이었다.


조선적은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일본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무국적의 재일동포다. 이들은 패망한 일본 정부가 일본 열도에 있던 조선반도(한반도) 출신자에게 부여한 호칭인 ‘조선적’을 바꾸지 않고 살아왔다. 이들이 경계인의 삶을 택한 건 분단된 조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대부분이 경상도와 제주도 출신이거나 그 후손이지만, 남북의 체제 대결 속에 이들의 귀향길은 정권에 따라 느닷없이 닫히곤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나는 사라진 '조선'이라는 국적을 여전히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기획 보도를 발제했다. 마침 국권침탈 100년이 되는 해여서, 이들을 통해 국권침탈의 의미를 돌아보려는 의도였다. 한국 법원에서 만나지 못한 연구자를 일본에서 만났고, 입국 거부로 한국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또 다른 조선적 3세 청년도 인터뷰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눈썰미 좋은 현지 코디가 멀리 있는 한 무리의 청년들 가운데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오네요.” 전화를 걸었더니 그 청년이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 한 장 없는 조선적 청년을 어떻게 한눈에 알아봤을까. 코디는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으로 이민해 정착한 1세대, 이른바 ‘뉴커머’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청년만 걸음걸이가 달랐다고 했다. 한국인은 일본인과 걸음걸이가 다르다고, 좀 더 조심성 없이 성큼성큼 걷는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처럼 일본에서 태어난 그 청년은 재일조선인이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출신이었다. 그곳에서 우리 언어와 역사를 배우는 동안 걸음걸이까지 그에게 깃들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지만, 한반도에 대한 상상으로 결속한 그 공동체의 경험이 체화되어 겉으로 드러난 것일 게다.


조선적은 세 개의 고향을 품는다. 재일조선인 2세였던 서경식은 선조의 출신국인 ‘조국’은 분단되기 이전 상태의 한반도이고, 자신이 태어난 지리적 장소인 ‘고국’은 일본이라고 구분한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국민으로 속한 나라 ‘모국’은 한국/북한/일본/조선적(무국적)으로 각자 나뉜다고 설명한다.[1] 이렇게 기억이나 지리적 공간에 구속되지 않는 다중 정체성은 그들의 삶에 긴장과 불안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는 “디아스포라야말로 국민국가의 틀이 흔들리는 근대 이후 인간의 존재 형식을 앞서 구현한 존재”라고 믿었다.



고향을 재구성하는 이동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 가운데는 마침내 선조의 고향, 조국으로 귀향을 감행한 이들도 있다. 19세기말 경작지를 찾아 두만강을 건넜던 조선인들의 후손인 조선족이 대표적이다. 재중동포인 조선족은 한국으로 돌아온 재외동포 중 최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인구 조사에서 조선족은 2000년 192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 기간에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은 70만 명 넘게 늘었다. 권준희는 한국을 향한 조선족의 집단적인 이주 열망을 12년에 걸친 민속지 연구를 통해 분석했다.[2]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에 ‘한국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 중국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집단농장이 생활을 보장하던 방식이 시효를 다하면서, 중국에서도 개인의 자본 축적 활동이 권장된다. 이와 맞물려 1992년 한중 수교로 한국에 친족이 있는 조선족들의 조국 방문길이 열렸다. 한국에서 단기간에 돈을 벌어와 연변에 번듯한 집 한 채를 마련하는 이들이 등장하면서, ‘코리안 드림’이 조선족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으로 떠올랐다.


한국 정부는 조선족을 나머지 외국인 노동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초기에는 상당수 조선족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제조, 건설, 간병 등 저임금 노동시장에 불법 체류자로 진입했다. 그러다 2005년 재외동포 방문취업비자인 H-2 비자가 도입되며 조선족은 비로소 한국 사회에 공식 편입된다. H-2 비자는 1년 간 중국 체류 - 3년 간 한국 연속 체류 - 출국 후 재입국해 2년 간 한국 추가 체류를 허용한다. 다만 단순 노무 취업만을 허용하고 체류 기간에 제한을 두었다는 점에서, 전문직이 받는 F-4 비자에 비해 차별적인 제도로 여겨진다. H-2 비자는 ‘한민족’이지만 한국 국민이 아닌, 그러면서도 한국어를 구사해 국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되는 조선족이 한국과 맺는 독특한 ‘민족 관계성’을 보여준다.


H-2 비자가 만든 ‘1-3-2 리듬’에 따라 조선족이 한국으로 국제 이동을 반복하면서, 이는 연변이라는 공간과 조선족 공동체에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권준희에 따르면, ‘1-3-2 리듬’을 통해 조선족에게 한국은 노동의 현장으로, 연변은 휴식과 소비의 공간으로 분리된다. 한국은 강도 높은 노동을 빠른 속도로 수행하고 돈을 버는 노동의 공간인 반면, 연변은 비자를 다시 받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며 벌어둔 돈을 쓰는 소비의 공간이 된다. 더욱이 한국에서 연변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돈은 이른바 '송금 주도형 발전'을 통해 연변의 급속한 도시화를 촉진했다.


동시에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떠나면서 빈자리에는 한족이 밀려들었다. 국제 이주가 쉽지 않은 한족들은 연변에서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서비스 일자리를 메우며 국내 이주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반면 다음 세대의 조선족은 아예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시절에 한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조선족의 민족적 중심지였던 연변은 이제 조선족 인구 비중이 낮아져 소수민족 자치주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족의 고향에 대한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 한국에 온 조선족들은 "한국이 고향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공식 언어가 조선어(한국어)인 연변처럼, 한국에서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5년 간 한국 생활을 하다 돌아간 연변은 조선족에게 "고향인데 고향 같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일상이 장시간 노동을 통해 소속감을 준 반면, 비자 규제가 풀릴 때까지 돈을 쓰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연변 생활은 경제적, 정서적으로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위안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조선족의 국제 이주에 대한 연변 사회의 평가가 역전된다. 2010년대 중반에는 한국으로의 이주가 오히려 연변에 뿌리내리지 못한 부끄럽고 뒤쳐진 선택으로 여겨지게 된다. 조선족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이동 양상을 통해 권준희는 오늘날 이동을 추동하는 힘은 고정된 민족 정체성이나 과거의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정치, 경제, 제도적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다중적 연결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공간을 재편하는 상상의 힘


한국을 상상의 고향으로 동경하는 건, 식민 지배와 냉전의 역사 속에서 고향을 떠난 재외동포들만이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누적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제작한 북미의 재외동포들도 한국과의 관계를 공공연히 강조한다.[3] 5살 때 이민을 갔지만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작품의 세계관에 영향을 줬고, 이방인으로 경험한 다중 정체성이 캐릭터 설정에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한국에서 인정받았다는데 뿌듯함을 느꼈다”라고 얘기한다. 이들은 경계인인 자신들이 한국의 구체적인 생활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것에 자부심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교포라서 한국을 더욱 낭만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서울이 실재 경험한 공간이 아닌 철저한 조사와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케데헌은 혼종성을 특징으로 하는 K-pop과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인 서울을 적극 활용하면서, K-pop의 발원지인 서울을 혼종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이 인정받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인권기구의 조사나 외신의 평가를 보면, 한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언급한 조선적과 조선족 동포에 대한 차별적인 입국 정책 또한 혼종적 존재를 배제하는 폐쇄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케데헌 장르는 말 그대로 '도시 판타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이 이상화한 서울의 이미지는 K-pop 팬덤을 매혹시킨다. 이들의 집단적인 이동은 서울의 주요 공간이 외국인 관광 중심으로 재편되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은 대이동의 시대다. UN 통계에 따르면 국제 이주자 수는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3억 40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1990년에 비해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내전과 재난이 이주를 촉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이주자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이들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발견해 내고 상상 속 고향을 현실의 장소로 만들어낸다. 이상향을 향한 열망은 그저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 집단적 상상과 이동은 현실 공간을 재편하고 도시를 재구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1]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김혜신 옮김. 돌베개, 2006.

[2] 권준희. 『이주, 경계, 꿈』. 고미연 옮김. 생각의힘, 2025.

[3] 아덴 조·아그네스 리·매기 강 인터뷰. YTN, 2025년 7월 19일. https://www.youtube.com/watch?v=69e5L6c0XG8&t=62s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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