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키즈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고 자란 세대를 말한다.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가 대중적인 주택 유형으로 자리 잡은 게 1970년대이니, 아파트 키즈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파트 키즈에 대한 기록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 존재와 기록에 시차가 있는 것이다.
아파트 키즈(키드)라는 표현은 1999년 언론 기사에서 처음 발견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 아파트에서 함께 자란 20대들이 결성한 힙합 그룹을 소개하는 기사였다.[1] 이듬해 사회면에는 "콘크리트 숲에서 태어나 자란 '아파트 키드'"의 안전 문제를 우려한 기사가 실렸다.[2] 아파트 단지 안에 놀이 공간이 없다 보니 도로나 주차장에서 노는 어린이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된다는 지적이었다.
2013년에는 서울 반포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1990년대 세 여고생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 출간됐다. 소설가 정이현은 이 작품에 '강남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거부하면서 "아파트 키즈의 감성을 담은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3] 그 해에는 서울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성장기를 보낸 주민들이 재건축에 앞서 단지를 기록한 활동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아파트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획전시가 열렸는데, 아파트 키즈에 대한 내용도 당연히 포함됐다. 아파트 키즈를 키워드로 등록한 논문은 2017년에야 나온 것으로 검색된다.[4] 이처럼 아파트 키즈의 등장과 기록 사이에는 한 세대에 가까운 시차가 난다.
혹시 아파트 키즈에 대한 인식, 또는 표현이 늦되게 생긴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1970년대에도 아파트 키즈가 새로운 현상이어서 언론이 관심을 가졌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30여 년 전 올챙이 기자 시절 때 일이다. 아파트 문화가 처음으로 생겨나던 당시, 아파트 주민의 행태는 언론의 관심이었다. 당시는 아이들이 방과 후 혼자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것이 낯선 일이었다. 시중에서 “아파트 아이들은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닌다더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아파트 키즈(kids)를 찾아 사진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여의도 아파트 단지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그런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데스크는 사진을 찍어 오라고 성화고 아이는 없고…. 할 수 없이 조카아이 목에 아파트 열쇠를 걸고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연출했다.
-문창극, 「쇠고기와 언론의 위기」, 중앙일보, 2008. 7. 15.
2008년도 칼럼에서 글쓴이는 30여 년 전 서울 여의도에서 아파트 키즈를 찾아 헤맨 일화를 소개했다. 연출해 찍었다는 이른바 ‘열쇠 아이’ 사진은 결국 언론 윤리의 문제로 지면에 싣지 않았는지 지금은 검색 결과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산층을 위해 개발한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1971년에 준공됐으니, 1970년대에 아파트 키즈가 처음 출현했다는 회고는 시기적으로 사실에 부합한다.
한편 아파트 키즈라는 표현에 앞서 1970년대 중반부터 '열쇠 아이', 'Key Boy'라는 표현이 언론 기사에 단편적으로 등장했다. 1980년대 기사에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열쇠 아이'는 부모가 맞벌이를 하느라 스스로 열쇠를 챙겨 생활하는 외로운 아이로 묘사된다. 지금도 이 표현이 더러 보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기록물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아파트 키즈는 그 존재가 기록되기까지 왜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일까? 아파트 키즈의 일원으로서 생각해 보건대, 당사자가 그 정체성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1970년대 아파트 대단지에서 장소감을 형성한 첫 세대는 1990년대에야 성인이 된다. 더욱이 새로운 현상이 한창 전개되는 순간에는 그 전모를 충분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여정이 일단락된 뒤에야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비로소 그 경험을 특별했던 것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내가 스스로를 아파트 키즈라고 인식한 것도 성장기를 지나 20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였다. 우연히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한국의 아파트 연구』를 읽은 게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을 한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한, 딱딱한 학술 서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아파트 단지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낯설게 보는 관점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다. 줄레조는 '르 코르뷔제의 빛나는 도시 구상이 서울에서 실현되었다'거나 '한강변의 아파트 단지는 구 소련의 집합주택 단지를 연상시킨다'는 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평을 펼쳤다. 그러면서도 근대식 주거 양식인 아파트에서 한국인들이 재생산하는 전근대적인 관습과 계급의식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 책은 대중적으로도 제법 인기를 얻어 나중에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나는 서른 즈음에 해외 취재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여러 도시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운 좋게 얻기도 했다. 한번 도시에 눈을 뜨니, 한국의 아파트 단지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특수한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어 서울시를 담당하며 도시계획과 행정, 그리고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가까이서 취재하면서 흥미를 느꼈다. 다른 아파트 키즈들이 자기 서사를 풀어낸 활동도 그 무렵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립 영화나 기록 활동, 전시, 도서 등 다양한 창작물이 나왔는데, 아파트 키즈로 자처한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서른 즈음으로 내 또래였다. 아파트 담론이 대중적으로 활발해진 2010년대 중반에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도시계획을 즐겁게 공부했다.
이처럼 느린 등장은 신도시 키즈도 마찬가지다. 신도시 키즈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1990년대 초반 조성된 1기 신도시에서 나고 자란 세대를 말한다. 1기 신도시는 한꺼번에 아파트 단지를 대량 공급한 데다, 서울보다 주택 가격이 저렴해 젊은 부부가 거주하기에 유리했다. 이 때문에 신도시 키즈는 앞 세대보다 더욱 대규모의 아파트 키즈 집단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23년 1기 신도시의 정비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일부러 이들을 찾아다녔다. 정말 '일산 신도시 키즈'라는 매거진을 발간하고 활동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의 나이 역시 서른 안팎이었다. 일산은 양질의 주거 환경이면서도 분당에 비해 가격 변화가 크지 않아, 부모가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한 동네에서 오래 살며 신도시 키즈를 키워낼 수 있었다. 일산 신도시 키드들은 프로그램에서 신도시 공간 구조에 대해 도시 전공자 못지않은 예리한 통찰을 생활의 언어로 들려주었다.
아파트 키즈라는 자각은 왜 서른 즈음에 오는 걸까. 아마도 장소감을 형성할 만큼 아파트 단지에서 성장기 경험을 쌓고, 그 장소 경험을 독특한 것이라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 경험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서사로 구성해 사회에 발언하려면 성인이 되는 것 이상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주택의 평균 수명은 30년에 불과하니, 아파트 키즈는 고향 상실의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도 끝나버리면 그제야 소중하고 각별했다는 걸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다. 아파트 키즈가 이 모든 걸 맞닥뜨리는 시기가 바로 서른 즈음이다.
아파트 키즈는 한국 아파트 단지의 짧은 생애가 만든 장소 경험의 공동체다. 아파트 키즈는 외부에서 호명되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자기 서사를 사회적 맥락에서 구성한 주체로서 그 존재에 의미가 있다.
[1] 한국일보, 「그룹 O.D.C, 신나는 힙합으로 승부」, 1999. 7. 23.
[2] 중앙일보, 「더불어 사는 아파트… 놀 곳 없는 아이들」, 2000. 11. 7.
[3] 동아일보, 「작가 정이현 ‘1990년대 아파트키즈 감성 그렸죠’」, 2013. 7. 8.
[4] 임준하, 「아파트 키즈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장소애착과 기억: 둔촌 주공아파트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7.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