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소통

by 구경하

“휴대폰이 없으니 심심하네. 버스에 탄 지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누군가 허전함을 토로했다. 신입사원 채용시험 문제를 출제하러 가는 길이었다. 단체 이동을 위해 회사 버스에 타기 전 인사팀 직원은 휴대전화와 디지털 기기를 모두 거둬 갔다. 출제위원인 직원들은 목적지를 모른 채 버스에 실려갔다. 서울을 벗어나니 창 밖으로 토마토 농장이 이어지는 교외 풍경이 펼쳐졌다.


채용시험 출제는 도전적인 일이다. 보안 유지를 위해 5박 6일 간 통신이 단절된 곳에서 고립 생활을 해야 한다. 제안을 받고서 나는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우리를 데려다 놓은 장소는 그러기에 정말 최적인 곳이었다. 한 기업이 운영하는 콘퍼런스 호텔이었는데 주변에는 대중교통도, 편의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배정받은 방에는 전화기가 아예 없었다. 복도에 공용 전화가 있지만 외부와는 통화가 안 됐다. TV는 스마트 TV가 아니어서, 지상파와 종편, 국제뉴스 채널만 나왔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OTT가 없었던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2010년 즈음의 통신 환경이 이랬던 것 같다. 그러고도 인사팀 직원은 예산 문제로 1인실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출제위원들이 누구와도 상호작용할 수 없는 완전히 고립된 환경을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였던 듯했다.


나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나와 동료들이 겪는 변화를 관찰해 봤다. 낯선 상황에 긴장했는지 후배 한 명은 첫날밤부터 배앓이를 했다. 다른 후배는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가족이 있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대개 적응력이 좋고 낯선 장소의 경험을 즐기는데 말이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찾으려고 손을 뻗었다. 낮에도 자리를 옮길 때면 무의식 중에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챙기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 놓은 지 이틀이 지나서야 이런 증상이 잦아들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알람이 끼어들지 않으니 업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출제용으로 지급된 노트북도 문제 유출을 막기 위해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인사팀 직원이 입회한 장소에서 공용 PC로만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자료 검색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했고, 다른 출제위원과 눈을 마주하며 깊이 토론했다. 그 결과 우리는 심사위원과 다른 직종 출제위원들이 깜짝 놀랄 속도로 일을 해치웠다.


덕분에 업무 시간 이후는 온전한 휴식 시간이 됐다. 눈앞에는 꽤 근사한 강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으니 혼자 노는 시간은 더디게 갔다. 호텔 안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으니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느려질 일이 없었다. 음악을 들을 수도 없으니 같은 산책로를 또 돌고 싶지는 않았다. 그곳에 머무는 6일 동안 나는 피트니스에 3번을 갔다. 평소 일주일에 한두 번 운동던 것보다 두 배쯤 운동한 셈이다.


지루해진 나는 동료와 함께 건물 탐색에 나섰다. 꼭대기층에 전망을 기대하며 올라갔지만, 스카이라운지나 바가 아니라 가족모임을 할 만한 식당이 있었다. 지하에 있는 편의점은 냉장고에 자물쇠를 걸어두고 단체 투숙한 손님에게는 술을 팔지 않았다. 건물을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우리 말고도 6개 회사의 연수가 진행 중이었다. 결국 하릴없이 일찍 방으로 돌아와 집에서 가져온 소설을 읽었다. 작년에 사놓고도 읽기를 미뤘던 책이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출제 참고자료로 구입했던 시사 교양 책까지 모두 세 권을 독파했다.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밤늦게 숏폼이든 롱폼이든 영상을 시청하지 않으니 일찍 잤고, 알람 시계가 울리기 전에 먼저 깼다. 미리 알 수 없는 식당 메뉴 정도가 동료들 사이에선 소소한 즐거움이고 화제였다. 채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시청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꽤 재밌었고, 같은 이유로 그 방송을 본 다른 동료들도 의견이 일치했다. 동시 시청한 프로그램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한 경험이 얼마만의 일인가 싶었다.


우리가 사라진 바깥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회사로 복귀하기 전날, 가벼운 술을 곁들인 저녁 회식이 있었다. 우리는 고립 생활에 대한 소회와 지인들의 예상 반응을 주로 얘기했다. 출제위원은 부서에도 보안 사항이었기에, 우리는 주변에도 알리지 않고 닷새째 연락 두절인 상태였다. 한 후배는 자신이 여러 단톡방에서 가장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라며, 휴대전화를 켜면 자신의 행방을 묻거나 걱정하는 메시지들이 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른 후배는 트럼프의 입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상 자산의 잔고를 걱정했다. 또 다른 후배는 배우자가 바쁘고 서로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 아니어서, 통신이 끊긴 상황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했다. 각자 관심사는 달라도 우리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면 확인을 기다리는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질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시험 당일, 별 일 없이 필기시험 시간이 종료되고 마침내 휴대전화를 돌려받을 시간이 왔다. 대기 장소에는 기대감으로 살짝 흥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인사팀 직원이 휴대전화를 보관한 가방을 가져오자 환영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 명 한 명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기 시작하자, 대기 장소에서 말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그 자리에 밀려들었다.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폰 속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거 고독사해도 모르겠네.” 선배 한 명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동안 그를 찾는 연락이 별로 없었나 보다. “그래도 회사에 다니니까 우리는 연락 오겠지.” 또 다른 선배가 농담으로 말을 받았다. 조바심을 내며 휴대폰을 켰지만 6일간 알아야 할 소식들을 업데이트하는 데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얼굴마다 허탈한 웃음이 번지며 긴장감이 풀렸다. 단톡방에서 대화를 주도한다던 후배는 그동안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며 서운해했다. 사고 팔 타이밍을 걱정하던 후배의 가상자산 계좌도 별 일이 없었다. 신혼이지만 배우자와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던 후배는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고는 스스로 놀라워했다. 평소였으면 수시로 확인했을 메시지와 온갖 매체의 콘텐츠들이 그새 모두 흘러갔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취를 감추면, 부재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게 될 거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고립된 환경은 도리어 그동안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던 관계를 의심하게 했다. 인사를 건네던 인연들은 친밀감이나 우정이 아닌, 그저 의례적 반응이었던 것 같았다. 비대면 소통은 감정을 나눈 상호작용이 아니라 휘발되는 순간의 흔적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수시로 날아드는 각종 메시지는 집중을 깨는 방해물이었을 뿐 정말 긴급한 것은 별로 없었다. 20분 만에 따라잡을 수 있는 정보를 확인하느라, 평소 수십 배의 시간을 낭비해 온 것이 분명해졌을 뿐이다. 틈틈이 보던 콘텐츠들도 산만하고 의미 없는 분주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도 실시간으로 연락이 닿는 세상에 인터넷에서 분리된 채 고립된 장소에서 보낸 특이한 경험은 사진 한 장으로도 남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뜻밖에 다른 형태의 소통이기도 했다. 같은 건물을 수년간 함께 이용하면서도 스쳐가만 했던 다른 직종의 선후배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출제를 하고 온 기자 후배들과는 복도에서 지나칠 때 건네는 눈인사의 온도와 입꼬리의 각도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곧 신입사원들이 사무실에 나타나면 이들에게 필기시험 얘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건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읽은 책 중 하나는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이었다. 그는 인간의 소통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이며 시간을 할애해 물리적 공간 공유하는 대면 경험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소셜미디어가 제공하는 매개된 경험과 간접 소통은 본질적으로 데이터 수집과 서열 매기기여서, 진정한 공감을 나누거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만큼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끼고 대면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이용량이 정점을 지나 전 연령대에서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뉴스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5박 6일간의 디지털 디톡스 경험을 계기로, 나는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 이용 시간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긴급하거나 업무상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앱과 단톡방은 알람을 음소거로 전환했다. 확인은 가급적 몰아서 나중에 하고, 눈으로 보고 교류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무게 중심을 옮기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립된 그곳에서 출제한 필기시험 문제 역시 직접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에 채용하는 신입 기자는 AI 활용이 보편화된 이후에 취재를 경험하는 첫 세대다. 숙련된 기자들이 현실의 취재 경험을 토대로 AI 결과물에서 추가로 확인이 필요한 내용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반면, AI 네이티브인 신입 기자들은 경험의 기본값이 다른 세대다. 그러니 인공지능을 분별 있게 활용하고, AI가 대체할 수 없어 반드시 인간 기자가 취재로 확인해야 할 사항을 파악하는 판단 능력이 중요하다. 디지털이 고도화되고 비대면 소통 수단이 확장될수록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하고 공감하며 대면 소통으로 핵심에 다가가는 현장 취재는 더욱 강조된다. 우리가 출제한 서술형 문제는 ‘생성형 AI 시대에 인간 기자의 역할을 논하라’는 것이었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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