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장소
서울 160번 버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선이다. 이 간선버스는 온수동에서 도봉산역까지 서울을 남서에서 북동으로 가로지른다. 도심을 지날 때는 광화문과 여의도를 최단거리로 통과하고, 집 근처 정류장으로 이어진다. 도심에서 외근하다 회사로 들어올 때나 주말에 반대 방향으로 놀러 나갈 때 나는 이 버스를 즐겨 탄다. 지난해부터 이 노선 새벽 첫 차에는 서울의 첫 자율주행버스가 투입되기도 했다. 이 노선으로 업무지구에 새벽 출근하는 이들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160번 버스는 서울을 대표하는 버스 노선 중 하나다.
하루는 종로에 가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목적지 근처에 엄마가 다닌 중고등학교 옛 건물이 남아있다고 해서, 교정을 먼저 둘러볼 요량이었다. 강남 개발로 학교는 오래전 이전했는데, 옛 교정은 아직 주차장으로 쓰인다고 했다. 중학 입시가 있던 시절, 엄마는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이 학교에 수석 입학했다. 어릴 적 집에는 검게 변한 은수저 한 벌이 있었는데 ‘수석 입학 기념’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다만 이 학교는 엄마가 전기 입시에 낙방해서 재시험을 본 후기 학교였다. 이 시절을 회상하는 엄마의 얘기에는 어린 나이에 겪은 경쟁과 좌절의 상처, 딸에게 무심했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곤 했다.
정류장을 떠난 160번 버스는 영등포역을 거쳐 영등포 로터리로 향한다. 엄마가 나고 자란 외가는 영등포 로터리 부근에 있었다. 지금도 2층 건물이 남아있어 기계공구상가의 일부로 쓰인다. 그곳에서 한강은 어린이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 데다 과거에는 물도 깊지 않았다고 한다. 여름이면 한강에서 멱을 감고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탔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외가는 이후 영등포역 남쪽으로 이사했는데, 그 집에선 내가 갓난쟁이 때 찍힌 사진이 남아있다. 마당이 있던 2층 양옥집은 약 10년 전 신길뉴타운에 포함돼 사라졌다.
여의도로 들어선 버스는 여의대로를 따라 마포대로를 건넌다. 마포대교는 1970년에 준공됐으니, 엄마는 다른 다리로 한강을 건너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 버스는 한강대교나 1965년 세워진 양화대교로 다녔음직하다. 소녀 시절 엄마는 자신이 나중에 딸 둘을 낳게 되고 60년 후에 둘째 딸이 이 길에서 자신을 떠올릴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매일 그 길을 따라 여의도로 출퇴근하면서도, 더욱이 엄마와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헤어진 곳이 여의도였으면서도, 엄마와 발길이 겹치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익숙한 길 위에서 미처 해본 적 없는 생각에 잠긴 사이, 160번 버스는 공덕과 광화문을 지나 종로 5가에 다다랐다. 버스를 내리고 보니 시간이 넉넉히 남아 광장시장부터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이니, 소녀 시절의 엄마도 분명 이곳을 오갔을 것이다. 교복을 입고 시장통에서 주전부리를 했을 법도 한데, 나는 엄마에게 광장시장에 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엄마가 다녔던 옛 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학교에 이르는 무정형의 골목길은 아마도 옛 모습 그대로인 듯하다. 이 동네는 내가 수습기자 시절 처음 맡은 지역이어서 내게도 익숙하다. 언론사에서는 동대문 서(현재 혜화 경찰서)를 중심으로 서너 개의 경찰서를 묶어 그 지역을 동대문 라인이라고 불렀다. 나는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하루에 두세 번씩 라인을 돌며 사건사고를 챙겼고, 낮에는 집회 시위나 기자회견을 취재했다. 보고 시간에 늦지 않게 경찰서를 다 돌기 위해 큰길보다 이런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녔다. 평일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없었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기도 모자란 시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당시에는 엄마에게 이 동네에 대해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교정 구경과 볼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다시 160번 버스를 탔다. 엄마를 생각하며 노선도를 새삼스럽게 훑어보다가, 내가 가지 않는 구간의 대학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엄마와 아빠가 만난 학교다. 속도위반을 한 것도 아닌데 두 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불현듯 나는 이 노선이 엄마의 장소들을 한 번에 잇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가 나고 자란 영등포의 옛집들과 청소년기를 보낸 중고등학교, 첫사랑이자 남편을 만난 대학교까지, 엄마가 엄마이기 전 생을 보낸 장소들이 모두 이 노선으로 이어진다.
엄마와 160번 버스를 함께 탔거나, 이 노선에 대해 얘기했다면 어땠을까. 이 노선을 타고 다닌 지 22년이 됐지만 실제로 그래본 적은 없었다. 내가 영등포로 이사 온 건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도 몇 년이 지나서였다. 엄마가 태어난 옛집이 영등포 로터리 근처에 있다는 건 장례를 치르며 발급한 행정 서류를 보다가 알았다. 그 동네를 과거에는 영등포 삼각지라고 불렀다는 것도 근대 도시 덕후인 회사 선배로부터 최근에야 들었다. 옛 신문 검색 서비스에 엄마 이름을 넣으면 64년도 후기 중학 합격자 명단 기사가 나오고, 그 기사 제목이 ‘전기보다 우수’라는 것도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 보았다. 엄마의 장소들을 나는 시차를 두고 따라다니면서도 그러고 있는 줄 몰랐다.
내가 이 길에서 엄마를 떠올리게 됐다는 걸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니 엄마가 아직 살아계셨다면, 우리는 계속 같은 장소를 스쳐가기만 했을까. 미처 깨닫지 못하고 20여 년을 다녔지만 알고 나선 그 길을 걷는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다. 엄마가 걷던 길에 내 발걸음이 포개어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장소를 살아간다.
그조차도 나만 아는 일이 되었다.
* 상단 사진 ⓒ조현두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