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간다

by 구경하

내게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차이를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아버지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노인요양시설과 의료시설이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상태가 되면 요양병원이 아니라 종합병원으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하셨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며 겪은 일을 말하려 하신 것인지, 아니면 언젠가 자신의 말년을 맡겨야 할 자식을 준비시키려 하신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고 싶지 않아서 말없이 듣기만 했다.


아버지가 머물게 될 요양병원을 찾으면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지낸 요양원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부산 외곽에 있었다. 내부는 흰색 위주의 모던한 인테리어였고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깔끔했다. 친가 어른들은 잘 아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라서 믿을 만한 시설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거기는 오래전 할머니가 사시던 집과 가까웠다. 함께 간 고모는 커다란 창 너머로 손을 뻗으며 “저기 저 바다, 기억나지요?”라고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살던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가던 날 할머니는 어떠셨는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어른들께 물어봤었다.


살던 집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립 생활이 어려운 노인 환자가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려면, 그 삶의 무게를 가족이 지게 된다. 노인 학대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가해자의 과반이 배우자나 아들인 현실 뒤에는 돌봄 책임을 사실상 가족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있다. 노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주거지를 정하는 게 마땅하지만, 자립을 돕는 복지 서비스마저 노인 환자는 가족의 도움 없이는 신청하기 어렵다.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에서 노인 환자의 존엄한 노후는 가족의 노력에 좌우된다. 일본에서는 사회학자가 쓴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한국에선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아버지가 처음 파킨슨 진단을 받은 뒤 우리 가족도 아버지가 최대한 집에서 생활하시기를 바랐다. 안전을 위해 미끄럼 방지 바닥재와 손잡이, 동작 감지 조명을 설치했고,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해 환자용 침대와 보행 보조기 등을 지원받았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기구를 더 들여놓았고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 재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간병하는 가족을 지원하는 치매가족 돌봄 휴가나 방문간호 서비스 같은 제도는 실제 운영하는 기관을 지역에서 찾기는 쉽지 않았다. 노인 부부는 낯선 사람들이 집에 드나드는 상황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아버지는 24시간 돌봄과 의료인의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상태가 됐고, 폐렴을 거친 뒤 의사도 요양병원 입원을 권했다.


막상 요양병원을 알아보려니 막막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이트에서 등급이 높은 병원 목록을 추리고, 건너 아는 요양병원 관계자와 그 지역에 사는 친인척에게 몇몇 병원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요양병원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하지만 요양병원들은 팬데믹이 끝난 다음에도 감염 위험을 이유로 대개 병실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곳은 입원한 다음에도 보호자가 병실에 방문할 수 없었다. 폐쇄된 공간은 스스로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에게 안전하지 않고 정서적으로도 고립을 초래한다.


마스크를 쓰고 간 한 병실에는 의식이 저하된 노인 환자들이 몸에 줄을 매단 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산소발생기가 작동하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생명의 활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런 병실에서 홀로 인지 상태가 맑아지는 순간이 오면 환자는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옆 환자의 증상 악화나 섬망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도 불가피하다. 다인실은 간병의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한 공간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공동생활이 편안할 리 없다. 커튼 한 장으로 구분되는 개인 공간은 침대 하나에 불과해, 음악을 듣거나 환기를 하는 등 개인의 취향과 습관대로 생활하지 못한다. 우리는 가능하면 개인 공간이 보장되는 상급병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례식장을 함께 운영하는 요양병원도 이런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했다.


슬픈 순례였다. 언니는 도중에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고 우리는 거리에서 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조건의 요양병원을 찾았다. 병실 면회가 가능하고, 파킨슨 환자에게 필요한 재활치료가 제공되는 곳이었다. 개인실이라도 공립이어서 비용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아버지는 20년 전 할아버지 간병과 당신의 노후를 위해 부산으로 귀향하셨다. 아버지가 선택한 삶의 장소들과 지인들이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는 해운대 고층 건물이 그리는 익숙한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우리는 낯선 공간에 남겨진 아버지가 조금이나마 익숙한 동네에 있다고 느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종합병원을 퇴원할 때까지 우리는 아버지께 집이 아니라 요양병원으로 간다는 건 결국 말씀드리지 못했다.


노인 환자 입장에 서면 익숙한 도시가 다르게 보인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나서야 나는 부산 집에서 멀지 않은 요양병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병원도 건강하실 때는 거기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제야 집 근처에 요양병원들이 제법 많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 후에도 환자들이 요양병원을 드나드는 모습을 본 일은 별로 없다. 와상 환자는 이동과 외출이 어려워 요양병원의 조경이나 산책로 같은 외부 시설을 이용할 일이 드물다. 그보다 보호자가 한 번이라도 더 면회할 수 있는 접근성이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병실 밖 익숙한 풍경이 아버지께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보호자의 덧없는 바람이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머물렀던 여러 병실에서는 부산의 푸른 바다가 보였지만, 아버지는 끝내 몸을 돌려 그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셨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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