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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Apr 22. 2022

내 자녀 프레카리아트 계급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공부를 왜 하지요?



내 아이게 왜 공부하라고 하나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런 근원적인 답에서부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조금 더 생각을 더한 답도 나옵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이런 구체적인 방법까지 답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공부를 해야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부터 답해 볼까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곳 취직하면 잘 먹고 잘 사는 거니까

공부 잘해야 하니까 

스스로 공부를 잘 안 하니까

결국 학원 열심히 다니는 것


이렇게 결론이 나오나요?


의문을 제기해 보지는 않으셨나요?

아직도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곳 취직이 된다고 믿고 계시나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이런 일류 기업에서 좋은 대학 나왔으니 무조건 믿고 당신을 뽑겠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여 줄까요?


‘노동자’로서 뽑기는 하겠네요.

노동자를 절대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 밖에 할 수 없을 때, 그런 능력밖에 갖추지 못했을 때를 말합니다.

이 ‘노동자’의 자리까지도 곧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할 일들인데요.

노동자 신분으로 그 일을 한데도 아주 낮은 보수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업은 자신의 기업에 이익이 되는 사람을 뽑을 겁니다.

좋은 아이디어로 

이익을 창출해서 

기업도 잘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 기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고 싶을 것입니다.




학원 공부 잘하는 수준의 사람

지식적인 공부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좋은 대학 나온, 명문대 졸업장만 가진 수준의 사람을 뽑을까요?

지식만 집어넣은 네이버 검색 수준의 인간을 일류 기업에서 원할까요?

네이버나 구글이 월등하게 잘할 일을 하는 사람을요?

그런 일은 갈수록 인공 지능이 더 잘할 텐데요.


그리고 설사  좋은 곳에 취직되었다고 

그래서 잘 먹고살게  되었다고

잘 사는 것인가요?







더 나은 삶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기여하는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위의 4가지에도 모두 답해 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지식만 집어넣는 학원 몇 군데 더 다닌다고 

수학 문제 하나 더 잘 푼다고

한자급수 한 급수 더 올린다고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운다고 

중국어 하나 더 늘려서 배운다고 

이런 삶을 살아질까요?




어떻게 해야

어떤 공부를 하고 자라야

더 나은 삶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고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지성 작가는 ‘에이트’라는 책에서

네이버 지식수준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프레카리아트 계급(노동자, 제4계급, 최하위)이라고 되짚어줍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인공 지능이 할 수 없는 일

네이버 지식수준 이상을 해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생각’ 



생각이 깊어지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문학, 철학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 글에서는 생각이 깊어지는 공부나 인문학, 철학이나 비슷한 뜻으로 해석해 봐도 되겠습니다.


지식을 더하더라도 의미 있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지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더해진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야

지혜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혜의 씨앗들은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할 때 손들고 달려 나와 

자기를 사용해 달라고 나의 마음과 뇌에 신호를 보낼 것입니다.

그 지혜들을 잘 조합해서 문제 해결을 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

모아둔 지혜의 씨앗들이 선한 해결책을 하도록 나를 도와줄 것입니다.

나에게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도 좋은 해결책을 찾도록 해 줄 것입니다.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


이 두 가지를 창작한 사람과 이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창조적 상상력은 

문제 해결을 할 때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공감능력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있을 때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욕구를 잘 알아차리는 사람, 상대가 바라는 것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창조적 상상력'과 '공감능력'은 생각하는 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뿌리입니다.







내 아이를 공부시킨다면서

네이버 검색만 잘하는 아이로 훈련시키는 공부는 아닌지요?

시험 점수만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 공부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는 인간이 되는 길은 아닌지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만 잘하도록 한계 지우는 것은 아닌지요?




‘내가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가진 재능은 어떤 것일까?‘

‘이 재능으로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살지?’

‘나의 재능과 내가 쌓은 지식을 조합해서 어떻게 지혜로운 생각을 탄생시킬까?’

‘내가 더 쌓을 지식은 무엇일까?’

‘내가 더 배워야 할 공부는 무엇일까?’


생각이 더해진 바탕 위에서 필요한 공부를 더하는 것은 그건 맹목적인 암기 위주의 지식은 아닌 것이지요. 

필요한 지식인 것이지요. 창조적 상상력을 더하기 위한 재료를 모으는 것이지요.

인공지능을 리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대학 안 가도 지식을 습득할 방법은 늘려 있습니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만 알면

‘어떤 공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는 공부를 해 가다 보면 차차 찾아질 것입니다.

경험마다 모두 지혜의 씨앗으로 저장되어서 자신이 할 일을 더 잘 알아차릴 테니까요.


공부를 하는 방법은 수도 없이 오픈되어 있습니다.

질 높은 공부가 그것도 거의 공짜입니다.

국경도 초월하여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기도 전에 막무가내로 학원만 다니게 하니까

더 많은 지식만 집어넣으니까

학원 지식 집어넣느라 뇌가 지쳐갑니다.



독서를 할 에너지가 일단 없습니다.

생각하는 독서를 할 뇌의 공간도 없습니다.

생각할 마음의 공간도 없습니다.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게 안타까운 것입니다.




“미래(2090년)에 한국 인구의 99.997%가 프레카리아트로 전략한다.”

                                 -윤기윤, 서울대학교 교수, 2017-



2017년은 코로나 터지기 이전입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더 빠르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70년에 걸쳐서 진행이 될 일이었다면 50년 30년 후 더 빠르게는 10년 후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분명히 이런 세상일 거라는 미래사회 보고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들은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한 예상되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점쟁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아이가 99.997% 안에 들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요?

학원인가요? 독서인 가요?(둘만 단편적으로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도록 기회도 주어야 합니다.

(게임을 즐기는 차원의 하고 싶은 일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 생각‘이라는 것이 펑튀기 되어서 생각 창고에 쌓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혜가 필요할 때 스위치 눌러서 필요한 만큼만 뽑아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랫동안 차곡차곡 저장해야 생각이란 게 지혜의 싹이 되어서 탄생하는 것이겠지요.


정성을 들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오랜동안 기다려야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고치 안에서 나비로 탄생되는 기간입니다.

고치가 곧 탄생할 나비임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며 뭔가를 차근차근 해 내는 사람에게만 나비로 탄생될 수 있습니다.

편법이나 요행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성 들이는 일은 그 과정도 행복합니다.

결과의 기다림도  셀렙니다.

그래서 이 일(정성 들이는 일)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오래 결과가 안 보여도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다리며 뭔가를 꾸준하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분명히 나비가 탄생되는 시점이 오니까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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